관서빈흥록(關西賓興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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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 후기 정조의 명으로 평안도의 학자 중에서 경전에 밝은 사람을 뽑아, 어제조문(御製條問)으로 시취(試取)한 기록을 모은 과문집이다.

개설

이 책은 정조의 명으로 평안도의 학자 중에서 경전에 밝은 사람을 뽑아, 어제조문(御製條問)으로 시취(試取)한 기록을 모은 과문집이다. 1798년(정조 22) 평안감사민종현(閔鍾顯, 1735~1798)이 경의문대(經義問對)로 고시를 실시하여, 김도유(金道游) 등 3명의 조대(條對)를 서울로 보내, 그것을 다시 고열(考閱)하여 모두 참봉에 임명하고, 1800년(정조 24)에 그 조문(條問)과 조대를 본도에 명하여 간행한 것이다.

편찬/발간 경위

정조는 우문정책(右文政策)을 통해 삼대(三代)의 태평성세를 구현하려고 하였다. 쇠미해진 당대의 문풍(文風)을 진작시키기 위해 실시된 그의 우문정책은, 조선과 중국의 역대 시문 및 경전, 문집을 정리하여 간행하는 사업과 함께 정조 자신이 직접 인재 선발에 간여하는 한편 연소한 문신들을 교육시키는 것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빈흥록’에서의 ‘빈흥’이란 말은 인재를 선발한다는 의미로, 『주례(周禮)』에 그 연원을 두고 있는데, 지방에 대해 교화를 이루기 위해 ‘육덕(六德)’과 육행(‘六行)’, ‘육례(六藝)’가 갖추어져 있는 인물을 선발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797년(정조 21) 경에 집성한 『빈흥록』은 모두 3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는 6종의 빈흥록류가 수록되어 있다. 『빈흥록』은 한 번에 간행한 것이 아니라, 1791년(정조 15)부터 1797년에 이르기까지 정조가 기존의 과거제도 이외에 실시하였던 각종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들의 글들을 제각기 모아 간행했던 여러 종류의 『빈흥록』을 한 데 집성한 것이다.

『관서빈흥록』은 정조가 1798년(정조 22) 평안도에서 경전(經傳)에 밝은 사람을 뽑아, 경전조문(經傳條問)으로 시취(試取)한 경위에 대한 기록과 조대를 모아, 규장각에서 1800년(정조 24)에 간행한 책이다. 1798년 4월 19일에 정조가 전교를 내려, “관서 지방은 예로부터 상무(尙武)의 고장이라고 하지만, 김태좌(金台佐, 1541~?) 이래로 200년 가까이 드러난 인재가 없으니, 어찌 인재가 예전과 같지 않아서 그렇겠느냐?”고 하며, 평안감사민종현에게 명해, 경의(經義)에 밝은 사람을 추천하도록 하였다. 이에 민종현은 진사김도유(金道游), 유학(幼學) 김덕홍(金德弘), 유학 이춘겸(李春馦) 등 3인을 추천해 올린다. 평안감사가 추천한 이 3인에게 정조가 사서오경에 대한 조문(條問)을 내려, 조대하게 하고, 그 조대를 규장각 신하들로 하여금 편집, 교정하게 한다. 그리고 조대한 3인 가운데 김도유를 연석(筵席)에 불러들여, 『대학(大學)』 등의 경서와 주자(朱子) 등의 인물에 대해 묻고, 그의 나이가 많은 것을 안타까워하며, 규장각에 명하여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와 『주서백선(朱書百選)』을 내리도록 하였다.

정조는 1800년 4월에 규장각에서 편집과 교정을 완료한 『관서빈흥록』을 평안도에 내려 보내 인출(印出)하게 하였다. 인출한 이 책은 평안도 내 각 읍의 향교, 조대한 3인이 거주하던 용강(龍岡)·평양(平壤)·용천(龍川)에 한 건씩 보내도록 하고, 조대한 3인을 추천한 도백과 『관서빈흥록』 인출 당시의 도백에게도 각각 한 건씩 보내도록 명하였다. 또 평안도 내의 문신 및 수령으로 김계락(金啓洛) 등 11인, 찰방(察訪)김회빈(金晦彬) 등 2인, 조문을 받들고 내려간 초산부사(楚山府使) 송상렴(宋祥濂) 등에게도 각각 한 건씩 보내도록 명하였다.

이 자료에서 주목되는 것은 정조가 흥기(興起)하여, 세교(世敎)를 진작시키고자 했던 성학(聖學)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다른 빈흥록류와는 달리 이 『관서빈흥록』은 공령생(功令生)의 시취 없이 경공생의 조대만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조대한 이 가운데 한 사람을 직접 불러 경학에 대해 논한 구체적인 기록을 담고 있다.

서지 사항

3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반곽(半郭)은 19.8×14cm이다. 10행 20자이고, 상엽화문어미(上葉花紋魚尾)를 갖추고 있다. 크기는 31.3×19.8cm이고,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은 전교(傳敎)·연설(莚說)·장계(狀啓)·하사(下賜) 등이 실려 있고, 권2는 오경 중 사경(四經), 즉 『주역(周易)』·『상서(尙書)』·『모시(毛詩)』·『춘추(春秋)』 등의 조문을 유학자 김도유·김덕홍(金德弘)·이춘혐(李春馦) 등이 답한 것이 문제 조항별로 기재되어 있으며, 권3은 사서와 삼례(三禮)를 위와 같은 조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쓰여 있다.

1798년(정조 22) 4월에 경서에 밝은 사람을 보고하라는 평안감사에게 내린 것과 1800년(정조 24)에 김도유 등에게 『주자서절요』와 『주서백선』을 하사하라는 것과 이 『관서빈흥록』을 인출, 반송(頒送)하라는 것 등이다. 그리고 김도유의 경학에 관한 연설과 평안감사민종현이 올린 장계와 회유(回諭)도 실려 있다.

어제조문은 『주역』에 관한 답 7편, 『상서』에 관한 답 6편, 『모시』에 관한 답 6편, 『춘추』에 관한 답 8편이 수록되었고, 또 삼례, 즉 『주례』·『의례(儀禮)』·『예기(禮記)』에 관한 김덕홍 등의 답 7편, 『논어(論語)』에 관한 이춘혐 등의 답 8편, 『맹자(孟子)』에 관한 김도유 등의 답 8편, 『중용(中庸)』에 관한 이춘혐 등의 답 6편, 『대학』에 관한 김덕홍 등의 답 6편이다.

1798년 평안감사민종현이 경의문대(經義問對)로 고시를 실시하여, 김도유 등 3명의 조대를 서울로 보내, 그것을 다시 고열(考閱)하여 모두 참봉에 임명하고, 1800년에 그 조문(條問)과 조대를 본도에 명하여 간행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정조가 정책적으로 강조하며 제고하려 했던 성학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관서지방의 등용관계의 자료이자, 유학 연구의 참고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 김경용, 『조선시대 과거제도의 교육적 성격 연구』, 연세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8.
  • 김경용, 「조선시대 과거제도 시행의 법규와 실제」, 『교육법학연구』 제16권 2호, 대한교육법학회, 2004.
  • 손태도, 「과거 제도를 통한 광대의 가창 문화 연구」, 『판소리학회지』 제7집, 판소리학회, 1996.
  • 장재천, 「한국사상사학(韓國思想史學)-조선시대 과거제도와 시험문화의 고찰-」, 『한국사상과 문화』 39권, 한국사상문화학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