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덕(孔有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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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말 청초의 사람으로, 명을 배반하고 후금에 항복한 인물.

개설

공유덕은 명의 총병모문룡(毛文龍)의 부장으로, 등주참장에 임명되었다. 모문룡이 죽은 뒤 1631년에 등주에서 난을 일으켜 도원수(都元帥)라 자칭하다가, 1633년에 경중명(耿仲明)과 함께 후금에 항복하였다. 1636년 공순왕(恭順王) 작위를 받고 한군(漢軍) 정홍기(正紅旗)에 예속되었다. 1644년에는 강남과 서남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다. 1649년 정남왕(定南王)에 봉해졌고 광서(廣西)의 계림부(桂林府)에 주둔하였다가, 1652년 명나라 장군 손가망(孫可望)에게 패배하자 자살하였다.

활동 사항

누르하치([努爾哈赤], Nurhaci)가 요동을 점령하자, 공유덕은 같은 고향 사람인 경중명과 함께 피도(皮島, [가도])로 도망가 명의 총병인 모문룡의 부하가 되었다. 공유덕은 1629년 원숭환(袁崇煥)에 의하여 모문룡이 제거된 후, 등주순무(登州巡撫)손원화(孫元化)의 보병좌영참장(步兵左營參將)이 되었다. 1631년 홍타이지([皇太極, hongtaiji)가 대릉하성(大凌河城)을 포위하자, 손원화는 공유덕에게 기병 800을 주어 돕게 하였는데, 큰 비와 눈을 만나 병사들이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약탈을 일삼고 현지의 관원을 살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 일을 계기로 공유덕은 명을 배반하고 세력을 키워 나갔다. 혼란이 가중되었지만 명은 후금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이들을 토벌하지 못하였다.

1632년 1월 반란을 일으킨 공유덕은 등주성 공략에 나섰다. 등주성은 육로로 북경·산해관(山海關) 등과 연결되고 수로로 천진(天津)·요동(遼東)·가도(椵島) 등지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이자, 전략적인 요충지였던 것이다. 이어 인근에 위치한 내주(萊州)까지 함락시켰다. 다급해진 명은 죽을죄를 사면해 준다는 면사패(免死牌)를 하사하며 귀순할 것을 제의하였으나, 공유덕 등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북경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인조실록』 10년 6월 24일).

1633년 3월 가도부총(椵島副摠)심세괴(沈世魁)는 조선에 표문을 보내, 공유덕 등이 배를 탈취하여 여순(旅順)으로 도망갔다고 하면서 조선의 해안으로 숨어들지 모르니 방어에 만전을 기할 것을 요청하였다(『인조실록』 11년 3월 13일). 이들이 후금으로 도주한다는 사실을 조선에 알린 것이다. 비변사에서는 4월 6일 공유덕 등이 후금과 합류하기 전에 이들을 섬멸하여 근심거리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인조실록』 11년 4월 6일). 하지만 후금도 가만있지 않았다. 후금은 압록강에 닿아 있는 구련성(九連城)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고 공유덕 일행을 맞을 준비를 하였다. 조선 측 기록에 따르면 4월 9일에 기병 50여 기를 보내 중강(中江)에 이르러 공유덕 등과 연결하려고 한 사실이 있었다(『인조실록』 11년 4월 9일).

결국 공유덕 등은 선박을 이끌고 후금에 투항하는 데 성공하였다. 공유덕 등이 전함과 수군을 이끌고 귀순해 오자 홍타이지는 공유덕 등이 이끌고 온 전함을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며 기뻐하였다. 같은 해 6월 3일에는 공유덕 등은 무리를 이끌고 심양으로 들어갔는데, 홍타이지는 백관을 이끌고 궁궐 밖 10리까지 나아가 맞이하면서 공유덕 등을 껴안는 포견례(抱見禮)를 행하였다. 후금의 신하들이 너무 지나치다며 이를 말렸지만 홍타이지는 이를 일축하였다. 공유덕 등이 귀순하면서 함선과 수군 병력을 거느리고 왔으며, 당시 후금에 공포의 대상이던 홍이포까지 가져와 취약한 수군력을 보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홍타이지는 공유덕을 도원수에 임명하였으며, 공유덕의 휘하 부대를 천우병(天佑兵)이라 불렀다. 1636년 공순왕의 작위를 받고 한군 정홍기에 예속되었다. 병법을 잘 알아서 청(淸)이 입관(入關) 후 강남(江南)·호광(湖廣)·양광(兩廣)으로 진군할 때 공을 많이 세워 1649년 5월에 정남왕에 봉해졌다. 이후 광서(廣西) 지역을 진압하는 책임을 맡았다. 광서 계림부에 주둔하였다가, 1652년 7월에 명나라의 손가망에게 계림부가 함락되자 자살하였다.

참고문헌

  • 『명사(明史)』
  • 『청사(淸史)』
  • 『청실록(淸實錄)』
  • 『내국사원당(內國史院檔)』
  • 임종욱, 『중국역대인명사전』, 이회문화사, 2010.
  • 한명기, 『병자호란』, 푸른역사, 2013.
  • 한명기,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역사비평사,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