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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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고경중마방 |
한글표제 | 고경중마방 |
한자표제 | 古鏡重磨方 |
분야 | 교양서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영조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이황 |
간행처 | |
간행년일 | 1744 |
권책수 | 1권 1책 |
사용활자 | 목판본 |
표제 |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 |
소장처 | 규장각,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아사미 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 |
이 책은 1607년(선조 40) 이황(李滉)이 옛 명(銘)·잠(箴) 중에서 수양이 될 만한 것을 뽑아 엮은 교양서다.
개설
퇴계(退溪) 이황이 옛 잠명(箴銘: 삶의 지침이 되는 교훈적인 글) 중에서 수양이 될 만한 것을 뽑아 엮은 책이다. 중국 고대의 성왕(聖王)인 은탕(殷湯)의 반명(盤銘)·주무왕(周武王)의 석사단명(席四端銘)·당송(唐宋)의 명현 한유(韓愈)의 오잠(五箴)·정자(程子)의 사물잠(四勿箴) 등 스물 세 명의 잠명 76편이 수록되어 있다. 여러 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는데, 남아 있는 유물은 1744년(영조 20)에 간행된 것이다. 책머리에 김재로(金在魯)가 쓴 머리말이 있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1744년(영조 20) 정구(鄭逑)가 간행하였다. 책 끝에는 편자의 오언시가 있어, 책의 제명이 선철(先哲)의 학문태도를 본받는 것에서 유래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이라는 말은 ‘옛 거울을 거듭 갈고 닦는 묘방’이라는 뜻으로, 이 책 은 퇴계 이황이 여러 성현들의 명(銘), 잠(箴), 찬(贊)을 한데 모아 엮은 것이다. 종류상 ‘명’은 돌이나 나무 쇠붙이 등에 새겨서, 마음을 경계하는 글이고, ‘잠’은 벽 등에 붙여, 마음을 다스리고, 경계하는 글이며, ‘찬’은 어떤 대상에 대해 칭송하고 기리는 글이다. 이처럼 옛 성현들은 한시도 마음을 놓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글을 책상, 벽, 거울, 침실, 심지어는 세숫대야나 지팡이 위에까지 쓰고 새겨서, 잠시라도 수행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던 것이다.
퇴계가 보기에 인간의 원래 마음은 순수 광명체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물욕에 사로잡혀 생활하다 보니 점차 어두운 구름에 가려지게 된다. 이렇게 오염된 마음을 원래의 밝은 마음으로 되찾아 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방법들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먼지와 티끌로 오염된 거울을 부지런히 갈고 닦아, 마침내 원래의 밝은 거울을 되찾아 가는 묘방을 적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지 사항
1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이고, 반곽(半郭)은 21.2×16.0cm이다. 10행 20자의 유계(有界), 내향1· 2엽화문어미(葉花紋魚尾)를 갖추고 있으며, 규장각,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아사미 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책머리에는 1744년(영조 20) 김재로(金在魯)가 쓴 ‘어제고경중마방편제(御製古鏡重磨方扁題)’가 있으며, 영조의 어제시가 있다. 본문에는 고대의 성왕인 은탕의 반명과 주무왕의 석사단명 등으로부터 당송의 명현인 한유(韓愈)의 오잠(五箴), 정자(程子)의 사물잠(四勿箴) 등 23명의 잠· 명 76편을 수록하였다. 그리고 끝에는 주희(朱熹)의 고경중마(古鏡重磨)가 자기수양에 지침이 된다는 칠언시와 그 대의를 밝힌 이황의 해설이 있으며, 그 끝에는 책의 요지를 밝힌 이황의 오언시와 그것을 해설한 정구의 글이 함께 실려 있다. 이 책은 1744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의하여 간행되어, 세자시강원의 교재로 쓴 것이다.
이 책에는 총 25명의 선현이 남긴 70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중 주자(朱子)의 글이 22편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장식, 오징의 글을 각각 10편, 7편 수록하였다. 그리고 『경의재명(敬義齋銘)』, 『경재잠(敬齋箴)』 등 경(敬)에 대한 글이 많이 실려 있다. 이것으로 퇴계 사상의 바탕은 성리학이며, 특히 ‘경’을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퇴계가 59세 때에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 안동에 머물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자 만들었다. 자신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었음으로 생전에는 남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퇴계가 돌아간 뒤 제자 조목이 도산서원에서 이를 발견하여 공개하였다. 1607년(선조 40)에 제자 정구가 이를 간행하게 되자, 퇴계의 제자들이 널리 읽게 되었다. 그러다가 1744년에 영조는 이 책을 다시 간행하고, 세자에게 가르치게 하였다. 이 때 영조는 “세자는 한 마음으로 본 받으라.”고 당부하였고, 나아가 병풍에 써서 곁에 두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경중마방』은 왕실의 수양서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오늘날 사람들은 재산 증식이나 출세와 같은 현실적인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삶의 본원적 문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하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에 대해 의심하거나 고민하지 않고 바쁜 일상을 살아간다. 퇴계가 선현의 좌우명으로 수양했던 것처럼 진정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고민할 때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 김성훈,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과 수양론-'敬'을 강조한 箴·銘 작품을 중심으로-」, 『숭실어문』 제23집, 숭실어문학회, 2009.
- 김성훈, 「進溪 朴在馨의 『해동속고경중마방』 연구」, 『동양문화연구』 제22집, 영산대학교 동양문화연구원, 2015.
- 임기영, 「『古鏡重磨方』의 간행과 판본」, 『서지학연구』 제56집, 한국서지학회, 2013.
- 최제목, 「退溪思想과 '거울'의 隱喩」, 『양명학』 통권 제24호, 한국양명학회,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