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고사비례(經筵故事比例)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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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경연고사비례 |
한글표제 | 경연고사비례 |
한자표제 | 經筵故事比例 |
분야 | 역사서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정조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김종수 |
간행년일 | 1788 |
권책수 | 1권 32쪽 |
소장처 | 규장각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경연고사비례(經筵故事比例) |
1788년(정조 12) 좌참찬(左參贊)김종수(金鍾秀)가 경연에서 시강하였던 내용을 조목 별로 정리하고, 직접 써서 정조에게 올린 책.
개설
1788년(정조 12) 좌참찬(左參贊)김종수(金鍾秀)가 경연에서 시강하였던 내용을 조목 별로 정리하고, 각 조목 앞에 조목명과 번호를 쓴 뒤, 사서오경 등에서 관련된 적절한 구절을 덧붙여 설명한 책이다. 각 목마다 왕이 경연에서 한 말을 한ㆍ두 마디 인용했으며, 저자가 올린 상소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수록한 강의록이다.
편찬/발간 경위
원래 제목은 『경연고사(經筵故事)』로서 1788년(정조 12) 좌참찬(左參贊)김종수(金鍾秀)가 경연에서 시강하였던 내용을 써서 정조에게 올린 책이다. 왕의 지덕을 수양하는 데 필요한 경전 등 고금의 고사를 수록하였다.
서지 사항
1권 32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필사본이다. 세로 27.8cm, 가로 17.4cm이며,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입지(立志)ㆍ진학(進學)ㆍ극기(克己)ㆍ납간(納諫)ㆍ사천(事天)ㆍ자민(子民)ㆍ친현(親賢)ㆍ원녕(遠佞)ㆍ숭검(崇儉)ㆍ지겸(持謙)ㆍ회공(恢公)ㆍ호생(好生)ㆍ탁루(濯陋)ㆍ긍세(矜細)ㆍ계찰(戒察)ㆍ교태(矯怠)ㆍ무실(懋實)ㆍ신종(愼終) 등의 조목으로 나누어져 있다. 설명의 분량은 항목별로 한 장에서 서너 장까지인데 평균 두 장이며, 책 전체의 분량은 36장이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다. 예를 들면, 1789년 (정조 13) 11월 17일 “조강과 차대를 하니, 우의정김종수가 임금의 덕복에 대해 아뢰다.”라고 하였고, “신은 주연(胄筵)에서 시강(時講)하던 때로부터 삼가 성상을 보건대, 타고난 자품이 모든 임금보다 훨씬 뛰어나고, 의리(義理)는 핵심을 환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이에 신은 내심 삼대(三代) 때의 지치(至治)를 다시 보게 될 것으로 여겼는데, 전하가 즉위한 후 10 여년 사이에 비단 정사가 뜻대로 되지 못한다는 탄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끝을 잘 마무리하지 못할 우려까지 있습니다. 신이 실망하여 맥이 풀린 것은 애당초 논할 것도 못 되나, 우러러 생각건대, 성상의 마음에도 역시 틀림없이 처음의 마음을 떠올리며,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이 피력(披瀝)하고자 하는 것은, 또한 늙은이의 상담(常談)에 불과합니다. 주연에서 주대(奏對)한 것 외에 글로 써서 진계(進戒)한 것으로는 무술년의 『경연고사(經筵故事)』와 『경연비례(經筵比例)』 책자(冊子)인데, 차자로 올리고 정사했던 글 및 신축년에 올린 『내각고사(內閣故事)』 2 통[道]을 포함하고 있으며, 신의 평생의 정열은 모두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라고 하였으며, 또한 정조13년 기유(1789)조에 저자가 “신의 『경연고사비례』에 ‘성상의 자품은 하늘이 내신 훌륭한 자질이기는 하지만, 그 고명(高明)함이 발휘되는 가운데에 또한 시속(時俗)을 따르려는 뜻이 약간 있는데, 능히 습속(習俗)과 풍기(風氣)를 바꾸고, 습속과 풍기에 동화되지 않는 것은 영웅호걸다운 임금이 아니면 해낼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전형적인 강의안으로, 사료로서의 가치는 그리 크지는 않으나 의의는 『조선왕조실록』의 다음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깊이 쌓아 두고 드러내지 않으며 여유가 있고, 조급해하지 않는 것은 덕성을 기르는 방도가 될 뿐만 아니라, 또한 수명을 연장하는 데 일조가 됩니다.”라고 하였고, “우레가 치는 이변이 있었을 때의 전교에서 실질에 힘쓰는 데 부족하다고 자책하셨는데, 전하께서 이렇게까지 반성하면, 그것이 바로 진실한 마음일 것이고, 이 마음으로 인하여 확충하기를 두루 하지 않음이 없으며, 꼭 지켜서 혹여 잃지 않는다면 성실함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고, “삼가 바라건대, 지금부터는 삼강(三講 조강(朝講)ㆍ주강(晝講)ㆍ석강(夕講)) 및 소대(召對)를 큰일이 아니라면 한번이라도 거르지 말아서, 성상의 덕을 환히 빛내소서.”라고 했다는 기록 등에서 당시 저자가 정조에게 이 책을 통해 끼친 영향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강태훈, 「조선조 경연의 교육적 역할: 태조-중종을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2.
- 권연웅, 「조선전기 경연의 간쟁론」, 『경북사학』 14집, 경북사학회, 1991.
- 지두환, 「조선후기 영조대 경연과목의 변천: 조선성리학 확립과 관련하여」, 『진단학보』 81, 진단학회,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