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중정국(建中靖國)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중국(中國) 송(宋)나라 휘종(徽宗) 대에 사용한 연호(1101년).

개설

중국 송나라의 제 8대 황제인 휘종이 사용한 6개의 연호 가운데 첫 번째 연호이다(1101년).

당시 고려(高麗)는 비록 요(遼)나라의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송나라와의 관계는 상당히 긴밀하였다. 그리하여 건중정국(建中靖國) 연호를 사용하던 1101년, 고려 사신들이 송나라를 방문하였고, 이 때 휘종은 고려 사신들에게 『태평어람(太平御覽)』 천 권과 『신의보구방(神醫普救方)』 천 권을 하사하였다고 전해진다.

한편 휘종은 채경(蔡京)과 동관(童貫) 등의 진언에 따라 금(金)과 동맹하여 요나라를 협공하여 5대의 후진(後晋) 때 빼앗긴 연운(燕雲) 16주를 탈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이것은 송나라의 군사력에 문제가 있음을 주변국들에게 알리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휘종은 황위를 흠종(欽宗)에게 양위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휘종 연간에 벌어진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이후 송나라가 멸망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나라의 혼란을 미리 방지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할 때 휘종 치세의 사건을 제시하고 있다.

덧붙여 건중정국은 1101년에 한하여 사용된 연호이기는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휘종의 첫 번째 연호이기 때문에, 휘종 치세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줄여서 ‘건중(建中)’이라고도 표현하였는데, 연호 앞에 송나라라는 표기를 하여 당(唐)나라의 건중 연호와 구분하였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송사(宋史)』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