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적관(監的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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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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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감적관 |
한글표제 | 감적관 |
한자표제 | 監的官 |
상위어 | 무과차비관(武科差備官) |
관련어 | 칭전관(稱箭官), 봉자표관(捧字標官), 출마관(出馬官), 누수관(漏水官), 유음관(流音官), 척량관(尺量官), 서전관(書箭官), 전전관(傳箭官), 습전관(拾箭官) |
분야 | 정치/인사/선발 |
유형 | 직역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시대 |
왕대 | 조선시대 |
집필자 | 최형국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감적관(監的官)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중종실록』 4년 9월 11일 |
무과 시험에서 응시자가 쏜 화살이나 조총의 탄환 및 기창과 마상편곤이 표적에 맞았는지를 확인하는 임시 관리.
개설
무과 시험에서 응시자가 쏜 화살이나 조총의 탄환 및 기창과 마상편곤이 정확하게 표적에 적중하였는지를 확인하는 임시 관리를 말하였다. 조선후기 무과 시험에서 감적관(監的官)으로는 목전(木箭) 2명, 철전(鐵箭) 2명, 편전(片箭) 4명, 기추(騎芻) 5명, 관혁(貫革) 4명, 기창(騎槍) 3명, 유엽전(柳葉箭) 4명, 조총(鳥銃) 2명, 편추(鞭芻) 6명 총 32명을 배치하였다.
담당 직무
감적관은 무과 시험의 보사(步射)나 기사(騎射) 실기 시험에서 응시자가 쏜 화살이 표적에 맞았는지를 확인 및 보고하는 관리였다. 마상 무예인 기창이나 편추의 경우에도 짚 인형으로 만든 목표물인 추인(芻人)을 정확하게 찌르거나 때렸는지를 확인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에 조총이 무과 시험에 새로 채택되자 표적에 총알이 정확하게 맞았는지를 확인하기도 하였다. 감적관의 판단에 따라 과거 시험의 점수가 확정되었기에 맞지 않은 경우에도 맞았다고 보고를 하는 등 무과 비리의 핵심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중종실록』 4년 9월 11일). 그 밖에 무과 시험장 안에 말이 달리는 마로(馬路)의 상태를 점검하는 등 안전관으로도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무과총요(武科總要)』
- 나영일, 『『무과총요』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5.
- 임선빈·심승구 외, 『조선전기 무과 전시의 고증 연구』, 충남발전연구원,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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