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군(加平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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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경기도의 가평군을 관할하던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가평군(加平郡)에는 조선이 건국한 직후인 1396년(태조 5)에 감무(監務)가 설치되었으며, 조종현(朝宗縣)이 가평의 속현으로 소속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강원도에서 경기도로 옮겨 소속되었고,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감무를 현감(縣監)으로 고쳤다. 1507년(중종 2)에 군으로 승격된 이래, 1697년(숙종 23)에 일시적으로 현(縣)으로 강등된 때를 제외하고는 행정 단위는 군을 유지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한성부에 편입되었다가, 이듬해에 경기도로 다시 소속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가평군은 1396년(태조 5)에 감무가 설치되었고, 1413년(태종 13)에 지방행정 명칭을 개정할 때 감무를 현감으로 개칭하였다. 1507년에 중종대왕의 태실이 있어서 가평군으로 승격되었다(『중종실록』 2년 10월 16일).

조직 및 역할

『경국대전』에 따르면 현에는 종6품의 현감(縣監)과 종9품의 훈도(訓導) 각 1명이 있었다. 훈도는 지방 향교의 교생을 지도하기 위해 생원·진사 중에서 선택하여 임명하였으나 모두 무록관(無祿官)이기 때문에 맡지 않으려고 피하는 사람이 많았고, 지방의 향약이 활발해지면서 조선후기에 모두 폐지되었다. 『여지도서』의 가평군에는 종4품의 군수 아래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軍官) 10명, 아전(衙前) 26명이 있었다. 좌수와 별감의 경우, 지역과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군(郡)에는 대개 3명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임무는 6방을 분장해서 좌수가 이·병방을, 좌별감(左別監)이 호·예방을, 우별감(右別監)이 형·공방을 맡아 수령의 자문에 응하고 풍기를 단속하며 향리를 규찰하는 등 수령을 보좌하는 것이었다. 지방 양반 중에서 나이가 많고 덕망이 있는 자를 추대하여 우두머리를 좌수, 차석을 별감이라 하여 수령이 임명하였다. 임기는 대개 2년이었다. 군관은 군사적인 실무를 담당하였고, 아전은 지방 관청의 하급 행정실무자로 이·호·예·병·형·공의 6방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변천

가평군은 1507년(중종 2)에 왕의 태실(胎室)이 있는 곳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다. 1697년(숙종 23)에 역적 이영창(李榮昌)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0년 뒤인 1707년(숙종 33)에 다시 군으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가 개편되어 전국이 23개 부 337개 군으로 바뀔 때 한성부 소속 가평군이 되었으며, 같은 해 7월에는 포천군에 합병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시행됨에 따라 경기도 가평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경기도(京畿道) 가평군지지(加平郡地誌)
  • 차문섭, 「중앙집권적 정치구조」, 『한국사』10, 국사편찬위원회,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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