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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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례(喪禮)에서 장례를 치르기 전까지 망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의식.

개설

유교 상례에 사용하는 음식은 전과 제(祭)로 구분되는데,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음식의 변화를 보여 준다. 전은 시신을 땅에 묻기 전까지 고인에게 음식을 공궤하는 의례이고, 제는 시신을 안장한 후 신주(神主)를 대상으로 한 의례이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국장(國葬)을 예로 들면, 시신을 목욕시키고 습의(襲衣)를 입힌 후 음식을 올리는 습전(襲奠)부터 전이 시작된다. 그리고 시신을 능에 안장(安葬)한 후 신주에 명호(名號)를 적는 입주전(立主奠)까지 전이 이어진다. 이로써 시신은 땅에 묻히고, 신주가 망자를 상징하는 신체(神體)가 된다. 이후부터 망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의식을 제라고 부르는데 그 첫 제사가 우제(虞祭)이다. 고대에는 전과 제를 형식상 시동(尸童)의 유무로 구분하였다. 장례를 지내기 전에는 시동을 세우지 않고 음식만 진열하였는데 이를 전이라고 하였다. 그 밖에 뇌주(酹酒)나 폐백(幣帛)의 유무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전과 제의 구분은 식사와 제사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다. 전은 살았을 때 먹는 식사의 연장이라면, 제는 인간과 구분되는 조상신에게 드리는 음식으로 간주하였다. 전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첫째는 정기제로서 조석전(朝夕奠)과 삭망전(朔望奠)이 있다. 이것은 하루 중 아침과 저녁, 그리고 한 달 중 그믐과 보름에 음식을 올리는 의식이다. 조석전은 조석곡(朝夕哭)과 결합되어 있다(『숙종실록』 1년 3월 29일). 즉 아침의 조전(朝奠)과 저녁의 석전(夕奠)에 앞서 곡을 하였고, 음식을 올린 후에도 곡을 하였다. 둘째는 별전(別奠)으로 특정한 상례 절차를 수행한 후 음식을 올리는 것이다. 습전(襲奠), 소렴전(小斂奠), 대렴전(大斂奠), 성빈전(成殯奠), 성복전(成服奠), 계빈전(啓殯奠), 조전(祖奠), 견전(遣奠), 천전(遷奠), 입주전(立主奠), 안릉전(安陵奠) 등이 이에 해당한다.

변천

조선전기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의하면 국장 중 가장 먼저 나오는 전은 습을 행한 후 거행하는 습전이었다. 그러나 조선후기 영조대에 편찬된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에는 복(復)을 거행한 후에 처음으로 전을 올렸다. 이는 사마광(司馬光)의 『서의(書儀)』에 나오는 시사전(始死奠)을 모방한 것이다. 처음 올리는 전의 특징은 평소 왕이 드시던 포, 젓갈, 단술 등의 음식을 올린다는 점이다. 이는 상례를 위한 준비가 아직 되지 않은 것을 나타낼 뿐 아니라 그 죽음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후 습의를 거행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전을 올렸다. 이러한 전의 음식은 봉상시(奉常寺), 내섬시(內贍寺), 내자시(內資寺)에서 돌아가며 준비하였다. 조석전의 찬품은 제1행에 약과 3그릇, 제2행에 실과 4그릇, 제3행에 소채와 정과(正果) 각 1그릇, 제4행에 떡 2그릇, 면과 탕 각 1그릇, 제5행에 술 3잔이 있다. 『국조상례보편』에도 이와 유사한 구성이지만 제2행에 실과가 3그릇으로 1그릇이 줄었고, 제4행에 전증(煎烝)이 1그릇 늘어났다. 별전의 경우 『국조오례의』에서는 협탁과 찬탁으로 구성되지만 『국조상례보편』에서는 협탁을 없애고 찬탁만으로 구성하였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국립문화재연구소, 『국역 국조상례보편』, 민속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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