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역월지(日易月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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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상(國喪)에서 상기(喪期)의 달수[月數]를 일수(日數)로 변경하여 기간을 축소하는 제도.

개설

일역월지는 상기를 단축시키는 방식 중 하나로서, 예제(禮制)에서 정한 상기의 달수를 일수로 변경하는 것이다. 이를 역월제(易月制)라고 한다. 예를 들어 부모의 상을 당한 자식의 상기는 27개월인데 일역월지의 계산법으로 하면 27일 만에 상(喪)을 마치게 된다.

변천 및 특징

역월제는 한(漢)나라 문제(文帝)에서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 문제 때의 단상(短喪)은 장례를 치른 후 36일 만에 상복을 벗는 것으로 이후의 역월제 방식과 달랐다. 27개월을 27일로 변경한 역월제는 당나라 때 확립되었다. 고려시대 국상에서도 역월단상제(易月短喪制)를 준용하였다. 조선에 들어와 태조와 정종의 국장은 고려의 예를 따라 역월제를 따랐다. 그러나 세종이 태종의 상을 치르면서 기존의 역월단상제를 거부하고 27개월 복상 제도를 받아들여 참최(斬衰) 3년을 시행하였다. 이후 국장에서 역월단상제는 사라졌다. 그러나 일역월지의 계산법은 공제(公除)의 기간을 정할 때 계속 사용되었다. 공제는 공적인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상복을 벗는 경우를 가리킨다. 이는 앞서 언급한 단상제와 유사한 개념이다.

조선시대의 공제는 단상제와 구별되어 다음 두 가지에 사용되었다. 첫째는 왕비나 왕세자빈이 친정 부모의 상을 당하였을 때 공제를 적용시켰다. 왕비는 친정 부모를 위해 자최(齊衰) 부장기(不杖朞)의 규정을 따라 1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공인(公人)인 왕비는 부친에 대한 애도만 할 수 없기에 한 달을 1일로 계산하여 13일이 지나면 상복을 벗었다(『성종실록』 4년 9월 6일). 둘째는 상중에 즉위한 왕이 공무를 시작하는 날을 정할 때 일역월지의 계산법을 적용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왕들은 성복(成服)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공제의 형식을 빌려 정사를 시작하였다. 공제는 대부분 성복 후 역월의 방식에 따라 27일이 지나서 수행하였다. 정종대에는 역월로 정한 공제 기간이 지나면 왕이 공무를 볼 때 참최를 벗고 시사복을 입었다. 이와 같이 일역월지는 단상이든 공제든 상기의 일수를 줄이고자 할 때 가장 많이 활용되었던 계산 방식이었다.

참고문헌

  • 김선민, 「兩漢 이후 皇帝短喪制의 확립과 官人三年喪服喪의 入律」, 『동양사학연구』98, 2007.
  • 김윤정, 「18세기 端懿嬪의 상례와 복제 논의」, 『장서각』32, 2014.
  • 정종수, 「여말선초 상장제도와 문화-장기와 삼년상을 중심으로-」, 『단호문화연구』6,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