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경지(印經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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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판에 새겨진 불경을 먹물로 찍어내기 위한 종이.

개설

중국 후한 때 채륜이 발명한 종이가 2세기 이후 한국에 전래되어 한국적인 방식의 독특한 한지가 탄생했다. 조선시대 조지서를 통해 크게 발전한 한지는 다양한 용도의 종이를 생산하게 되었는데, 그 중 인경지(印經紙)는 경판(經板)에 새겨진 불경을 찍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다.

연원

서기 105년 중국 후한(後漢) 때의 환관 채륜(蔡倫)에 의해서 발명된 종이가 한국에 전해진 시기는 대략 서기 2~4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에서 전래된 중국적인 제지 방법에 닥나무 껍질을 주원료로 하여서 한국 고유의 방법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 한지(韓紙)이다. 종이의 전래와 제지술의 발달은 4세기 경 불교의 전래와도 깊은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인경지 역시 그때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지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두껍고 질겼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삼국,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한지 제지술의 완성기로 종이 제조 기관인 조지소(造紙所)를 설치해 종이의 규격을 통일시키고 원료를 다양화 했다. 닥나무가 아닌 율무, 버드나무, 소나무, 창포 등을 사용했으며 가공 기술이 매우 발전하여 여러 형태의 종이가 제작되었다. 한지는 임진왜란 이후 기술자와 원료의 부족으로 쇠퇴기를 맞았다.

내용 및 특징

한지의 종류는 몇 가지 기준에 따라 분류된다. 원료, 용도, 가공법 등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인경지는 용도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 주로 경판에 새겨진 불경을 먹물로 찍어내는 데 쓰였다. 불가에서는 다라니지라고도 부르며, 불경을 간행할 때 쓰는 종이로는 불경지(佛經紙)도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만든 이런 종이들은 품질이 뛰어나 중국 원나라 때에는 고려의 종이를 대량으로 수입해 가기도 하였다.

한지는 닥나무를 원료로 하여 섬유질이 단단하고 질겨서 내구성이 뛰어난 한편으로 지면이 부드럽다. 한지로 만든 인경지의 우수성은 현재 국보 126호로 지정되어 있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통해 이미 증명되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704년(신라 성덕왕 3)부터 751년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현존하는 목판 인쇄물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인데, 12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훌륭한 보존 상태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인경지는 불경을 찍기 위한 종이였기 때문에 대부분 사찰에서 자급자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조선초에는 왕실에서 불사의 목적으로 인경지를 조지소에서 제작하기도 했다. 말년에 불교에 깊이 심취한 세종은 불경을 제작하기 위해 이조 정랑이영서 등에게 명하여 조지소에서 인경지를 만드는 것을 감독케 하였다. 또한 완성된 불경을 넣을 감실을 단장하려고 각 도에 명령서를 보내 칠을 구하게 하였다(『세종실록』 32년 윤1월 20일).

하지만 이는 매우 특별한 경우였으며, 대부분의 인경지는 사찰에서 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부분의 사찰은 산간에 위치해 닥나무의 수급이 원활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경전 등을 제작해왔기 때문에 종이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승역이 강화되는 조선후기에 이르면 사찰에서 소요되는 종이뿐만 아니라 각 지방 관아, 서원, 지방 유력가 집안, 심지어 청에 공물로 보내는 종이까지 사찰에서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김순철, 『종이 역사』, 예진, 2001.
  • 이승철, 『한지』, 현암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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