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사(安心寺)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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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안심사 |
한글표제 | 안심사 |
한자표제 | 安心寺 |
상위어 | 불교(佛敎), 사찰(寺刹) |
관련어 | 불한사(佛汗事), 송암대사(松庵大師), 원명국사(元明國師), 이희지(李喜之), 진표율사(眞表律師) |
분야 | 문화/종교/불교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집필자 | 이종수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안심사(安心寺)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효종실록』 10년 윤3월 3일, 『경종실록』 2년 4월 17일 |
1659년(효종 10)에 땀을 흘린 불상이 있었던, 청주구룡산의 사찰.
개설
안심사(安心寺)는 청주구룡산(九龍山)에 소재해 있으며, 신라시대 진표(眞表) 율사(律師)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1325년(고려 충숙왕 12)에 원명(元明) 국사(國師)가 중창하고, 1626년(인조 4)에 송암(松庵) 대사(大師)가 중수했다. 1659년에 안심사 불상이 땀을 흘렸으며, 사찰 뒤가 명당(明堂)으로 유명하였다. 현존하는 유물로는 영산괘불탱, 대웅전, 세존사리탑 및 탑비, 비로전 등이 있다.
내용 및 특징
안심사와 관련한 기록으로, 1659년(효종 10)에 안심사 불상에서 땀이 흘렀다는 이경석(李景奭)의 언급과(『효종실록』 10년 윤3월 3일), 1722년(경종 2) 역적으로 붙잡힌 이희지(李喜之)에 대한 공초(供招)에서 안심사 뒤에 명당(明堂)이 있고 그 산은 정가(鄭家)의 기물(器物)이 될 것이라는 진술(『경종실록』 2년 4월 17일) 등이 있다.
현존 유물
현존하는 유물로는 영산회괘불탱(국보 제297호), 대웅전(보물 제664호), 세존사리탑 및 탑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 비로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등의 지정 문화재와 석불좌상, 석탑 부재, 다라니경 목판 등의 비지정 문화재가 있다.
영산회괘불탱은 1652년(효종 2)에 제작되었으며, 길이 7.26m, 폭 4.72m의 크기로, 본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비롯하여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여러 무리들과 석가를 호위하는 사천왕상 등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은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79년 대웅전을 해체·수리하면서 발견된 「충청좌도청주남령구룡산안심사중수기(忠淸左道淸州南嶺九龍山安心寺重修記)」를 통해 1606년에 중수했음이 밝혀졌다. 내부에는 석가여래를 주불로 하여 좌우에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봉안하고 있다.
세존사리탑 및 탑비는 방형의 지대석 위에 8각형의 하대석을 놓아 만든 높이 200㎝ 가량의 석종형 부도이다. 그리고 함께 있는 높이 203.5㎝의 탑비는 1781년에 제작되었으며, 1881년(고종 18)에 무주 구천동(九千洞)으로 옮겼다가 1900년(광무 4)에 승려 광우(廣祐)와 등원(登院)이 다시 안심사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비로전은 1613년(광해군 5)에 처음 세워졌고, 1842년(헌종 8)에 중수하였다. 내부에는 소조석가모니불좌상, 아미타불좌상, 약사불좌상과 함께 나한상들이 모셔져 있다. 모두 조선후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외에도 1601년(선조 34)에 제작되어 ‘만력이십구년신축(萬曆貳拾玖年新築)’이라고 적힌 법고(法鼓) 등이 있다.
참고문헌
- 「충청좌도청주남령구룡산안심사중수기(忠淸左道淸州南嶺九龍山安心寺重修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