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초자취지법(焰硝煮取之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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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장소에서 흑색 화약의 제조에 필요한 염초를 불과 물을 이용하여 추출하는 법.

개설

염초는 화기를 발사할 때 필요한 화약 제조에 들어가는 성분이다. 화약의 제조에는 유황, 목탄, 염초의 세 가지가 필수적이며, 이 중 염초가 75%, 유황 15%, 목탄 10%로 염초의 비중이 제일 높았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화약 제조에서 염초 마련이 가장 중요하였는데, 그 제조 공정은 어려웠다. 염초의 주요 성분은 초산(硝酸)이었다. 조선시대 염초의 제조는 초가의 지붕에 올린 오래된 볏짚에 포함된 초산이 빗물에 녹아 처마 아래에 모인 흙을 채취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이때 염초의 채취를 불에 구어 얻었기[煮取] 때문에 염초자취라는 용어가 나타났다. 따라서 오래된 가옥의 흙을 채취하여 염초를 얻었으므로 그 생산량이 적은 것은 물론 지속적인 생산도 쉽지 않았다. 또한 염초자취에 필요한 흙은 취토장(取土匠)들이 담당했는데, 양민이나 권세가가 아닌 집에서의 채취는 용이했지만, 세력가들의 집에서는 구타를 당하는 사건까지 있었다(『광해군일기』 1년 11월 9일). 이런 배경으로 중국을 통한 염초 무역이 은밀하게 이루어지기도 했으며, 궁궐에서까지 흙을 채취하기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염초 제조는 화기류의 일본 유출을 염려하여 국초부터 비밀을 유지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활발할 수가 없었다. 국초에는 제조 장소도 국가 군기제조소인 군기감(軍器監)이 아닌 일반 관아의 비밀장소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일반인이 그 제조법을 알기 어려웠다. 이들 염초 제조소에는 장소마다 염초장(焰硝匠) 1인, 취토장(取土匠) 1인, 조역(助役) 5인을 두었다(『세종실록』 29년 2월 26일). 당시의 염초자취는 당염초(唐焰硝)와 향염초(鄕焰硝)의 두 가지가 있었다. 염초의 생산량은 당염초로 끓여 만드는 법이 향염초보다 두 배로 많았다(『세종실록』 16년 7월 2일).

변천

염초의 제조는 임진왜란 이후 도입된 조총과 오군영의 설립으로 인한 화약 소비량의 증가에 따라 활발해졌다. 임진왜란 와중에 일본인에게서 제조법을 도입하기도 했으며(『선조실록』 26년 3월 11일), 각 군영에서부터 지방 군읍까지 염초를 제조하고자 했다. 그러나 염초자취는 필요에 비해 그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청국을 통한 사무역이나 밀매에 크게 의존하는 실정이었다(『효종실록』 8년 4월 2일). 조선에서 염초자취가 자유롭게 되는 시기는 정조대이다. 정조대에 청에서 도입된 『자초신방(煮硝新方)』으로 국내 소모량을 충족할 수 있었다(『정조실록』 20년 5월 12일).

『자초신방』의 도입에 따른 염초자취의 제조 공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취토된 흙의 불순물을 골라낸다.

2. 큰 독 위의 대발에 흙을 놓고 물을 끊여서 그 위에 붓고 정수(正水)를 받는다.

3. 정수를 가마에 붓고 불길을 줄이면서 달인다.

4. 가마의 정수가 반으로 줄면 조금 떠서 찬물에 넣어 결정이 안 되면 계속 달인다.

5. 정수를 완전히 달인 후 식힌 다음 질그릇에 담아 하룻밤을 보내고 윗물을 버리면 가라앉는 결정을 얻는데 이것이 모초(毛硝)이다.

6. 모초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깨끗한 물을 부어서 녹인 다음 다시 달인다.

7. 달인 물을 그릇에 옮겨서 냉수를 조금 넣고 봉한 다음 통풍이 잘되는 서늘한 응달에서 식혀 염초를 얻는다.

의의

염초자취는 흑색 화약을 생산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공정이다. 조선의 화기 발달사와 화기의 제조 공정을 연구하는 데 반드시 거론해야할 내용이다. 나아가 화약 생산을 위한 염초 제조 과정만이 아니라 염초의 장만을 위한 중국과의 무역, 일본에 전해주지 않으려는 비밀 공정 등은 당시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화약 제조의 한 일면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 김지남, 『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장서각 도서분류 3-292), 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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