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의(四書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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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거시험 중 식년시와 증광시 및 생원시의 고시 과목 중 하나.

개설

『논어』·『맹자』·『대학』·『중용』 등 사서(四書)에 대한 의문점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답을 논술하도록 하는 제술시험[필기고사]의 한 형식이었다(『태종실록』 7년 3월 24일) (『세종실록』 7년 10월 17일) (『세종실록』 18년 3월 4일) (『광해군일기』 2년 1월 11일) (『숙종실록』 40년 8월 22일).

내용 및 특징

사서의는 『주역』·『시경』·『서경』·『예기』·『춘추』에 대한 필기시험인 오경의(五經義)와 함께 식년시와 증광시의 문과초시 초장인 사서의와 오경의 중 1문제 및 생원시 초시·회시의 고시 과목 중 하나였다.

사서의 문제는 사서의 내용에 대한 질문을 몇 개 제시하여 그에 대한 해명을 요청하는 것으로, 한 구절[單句題]에 대하여 뜻풀이를 하는 오경의 문제에 비해서 길었다.

사서의는 사서 가운데 두 책 이상에서 출제하거나 한 책의 여러 군데에서 엮어내어 출제하였고, 오경의는 오경 중 한 책에서만 출제하였다. 사서의는 사서의 전반적인 내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묻는 것이고, 오경의는 오경 각각에 대한 정통적 이해의 수준을 재려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서의는 내용상 서로 관련이 있는 구절들을 엮어 질문하는 방식으로 출제되었고, 오경의는 각 경서의 어느 한 구절의 의미를 풀이하도록 출제된 것이었다.

변천

조선초기에는 사서의보다 오경의를 중시하는 편이었다가(『세종실록』 18년 3월 4일), 조선후기로 가면서 사서의를 더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식년·증광의 문과초시에 사서의·오경의 중 1문제를 출제했었는데 『속대전』 규정에 의하면 오경의가 폐지되어 사서의만 시행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 『속대전(續大典)』
  • 『춘관지(春官志)』
  • 『과제각체(科題各體)』
  • 『임헌공령(臨軒功令)』
  • 이래종, 「의의(疑義)의 형식과 그 특성」, 『대동한문학』 제39집, 대동한문학회, 2013.
  • 조좌호, 「학제(學制)와 과거제」, 『한국사10』, 국사편찬위원회편,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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