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전(堰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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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조수가 드나드는 바닷가 갯벌에 둑을 쌓아 만든 광대한 경지.

개설

언전 개간의 사례는 고려의 몽골 침입기부터 나타났다. 몽골 침입을 피하여 강화도로 천도한 고려 정부가 조성한 것이었다. 하지만 언전이 본격적으로 개간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전기였다. 양반관료와 왕실에게 세금 징수의 권한인 수조권(收租權)을 분급하던 직전법(職田法)을 폐지하는 대신 각종 개간권을 주었던 16세기 무렵, 언전 개간이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왕실의 친인척과 양반권세가 등은 특권을 바탕으로 지방 백성들을 동원하여 광대한 연해안 농지를 개간하였다.

내용 및 특징

언전은 연해안의 간석지(干潟地)를 개간한 토지의 일종이다. 언전을 개간하려면 먼저 바닷물을 막을 수 있는 방대한 둑을 쌓아야 했다. 따라서 지형적으로 해안선이 복잡하고 간석지가 발달한 서해안과 남해안의 연해 지방과 강화도 같은 도서 지방에서 언전 개간이 용이하였다. 둑을 쌓아서 만든 간척지가 언전이 되려면 짠 기운을 씻어내야 하였다. 서유구의 『임원십육지』에는 “바닷가의 소금기가 많은 땅에 둑을 쌓아 조수를 막고 빗물을 모아서 소금기를 씻은 뒤에 규(畦)를 지어 벼를 심는 것을 보통 언전이라 일컫는다. 반드시 언전 내의 지세를 살펴 물길을 파서 물을 끌어 들이거나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모은 뒤에야 소금기를 제거할 수 있다.”라고 하여 언전을 조성하는 방법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변천

16세기에는 왕실 외척과 특권 양반층을 중심으로 한 대지주층이 서해와 남해 연안, 그리고 도서 지방에 대규모 언전을 조성하였다. 이는 중소지주층에 해당하는 향촌의 재지사족들이 주로 계곡과 하천에 천방(川防)과 보(洑)를 만들어 농업기술을 선도하였던 것과 대비되었다. 17·18세기에도 도서 지방을 중심으로 언전이 꾸준히 개간되었다. 다만, 16세기처럼 특권 지배층의 독점적인 개간이 아니라, 각 군현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체들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이러한 조선후기 언전 개간에 대하여 정약용은 5~6년동안 세금을 면제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참고문헌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이광린, 『이조수리사』, 한국연구원, 1961.
  • 이태진, 「16세기 연해지역의 언전 개발-척신정치의 경제적 배경 일단-」, 『한국사회사연구』, 지식산업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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