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영송(新舊迎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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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관원을 맞이하고 옛 관원을 보내는 일.

개설

수령의 교체는 그 원인별로 볼 때 크게 임기 만료인 과만(瓜滿), 징계로 인하여 교체되는 죄체(罪遞), 사직(辭職)과 다른 관직으로 이동하는 전보(轉補)가 있었다. 또한 부모의 병이나 상사(喪事)로 인하여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친환(親患)·친상(親喪), 몸에 병이 들어 관직을 그만두는 신병(身病), 일정 범위 내의 친족 간에는 같은 관사(官司)나 관련 계통의 관사에서 근무하지 못하게 하는 상피(相避)) 등이 있었다. 수령의 빈번한 교체는 관(官)의 규율을 무너뜨리고 영송(迎送)에 따른 주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등 여러 폐해를 낳았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수령의 임기는 법전에 1,800일로 규정되어 있었다. 수령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대부분은 주어진 임기가 만료되기도 전에 빈번히 교체되기 마련이었다. 수령의 빈번한 교체는 숱한 폐해를 불러일으켰다. 우선 그 폐단은 수령이 바뀔 때마다 행해지는 신영예절(新迎禮節)을 자주 치러야 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신영예절이란 신임 수령이 도착하기 전에 그를 위하여 치르는 의례적인 행사로서 지장봉진(支裝封進), 아사수리(衙舍修理), 기치영접(旗幟迎接), 풍약대후(風約待候), 중로문안(中路問安) 등이었다.

지장봉진은 말안장에 딸린 여러 기구인 안구(鞍具), 의복인 의자(衣資), 온갖 종이 지물(紙物)과 선물 등 그 지방의 산물을 예물로서 신임 수령에게 올리는 의례였다. 아사수리는 신임 수령을 맞이하기 위하여 관아(官衙)·내아(內衙) 등을 새로 단장하거나 수리하는 것이었다. 기치영접은 신임 수령이 도착할 때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군대에서 쓰던 깃발인 기치(旗幟)를 들고 영접하는 것이었다. 풍약대후는 외촌(外村)의 풍헌(風憲)·약정(約正)·장관(將官)들이 수령을 맞이하기 위하여 읍내에 들어와서 기다리던 예였다. 중로문안은 향리들이 부임지로 오고 있는 신임 수령에게 계속 사람을 보내어 문안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소요되는 제반 경비는 대동법 이전까지만 해도 모두 해당 군현의 주민들이 부담하였다.

변천

고마청(雇馬廳)은 조선후기에 지방관의 교체와 영송에 따른 제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설치된 재정기구였다. 수령의 빈번한 교체는 자연히 군현 행정의 주체가 되는 수령의 지위를 불안정하게 하였다. 정약용(丁若鏞)도 말했듯이, 나그네처럼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수령들이 지방의 실정에 어둡고 직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지역에 뿌리박은 향리와 품관들은 실권을 쥐고 주민을 수탈하기 쉬웠다.

수령의 빈번한 교체는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관리의 기강을 무너뜨린 중대한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더구나 왕조의 말기에 와서는 매관매직(賣官賣職)이 성행함에 따라 그 폐단은 더욱 심각해졌다.

참고문헌

  • 벽사이우성교수정년퇴직기념논총간행위원회 편, 『민족사의 전개와 그 문화』(상)· (하), 벽사이우성교수정년퇴직기념논총간행위원회, 1990.
  • 이수건, 『조선시대 지방 행정사』, 민음사, 1989.
  • 이희권, 『조선 후기 지방 통치 행정 연구』, 집문당, 1999.
  • 김덕진, 「조선 후기 지방 관청의 고마고(雇馬庫) 설립과 운영」, 『한국사연구』 112,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