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新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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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왕의 은혜를 입었다’라는 의미로 문과·무과·생원진사시의 급제자를 부른 명칭.

개설

문과는 여러 종류의 과거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시험이었다. 문과에 급제하기 위해서는 경학에 대한 이해, 문장 제술 능력, 현안에 대한 인식과 대책 마련의 능력 등을 갖추어야 했고, 정치적 변화 속에서 응시생의 출신 지역이나 혈연, 혹은 당색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평생 공부하여 문과에 응시한다고 해도 낙방(落榜)하는 것은 다반사였으며, 급제자는 항상 소수에 불과하였다. 사람들은 어려운 고난과 과정을 거친 급제자에게 ‘새로 왕의 은혜를 입었다’고 해서 신은(新恩)이라 불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의 문반 관원은 중앙집권적 양반 관료 체제를 이끄는 중심이며, 문반 관원이 되는 가장 일반적인 길은 문과에 급제하는 것이었다. 문과급제는 응시생 본인은 물론 가족과 친척의 소망이며,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러나 문과에 급제하고 싶다는 기대와 소망이 실현되는 경우는 항상 소수였다. 문과에는 응시생의 나이와 학력, 응시 횟수 등의 제한이 없는 반면 선발하는 숫자는 제한되어 있어서 어떤 별시(別試)의 경우에는 경쟁률이 ‘수천 대 1’에 이르렀다. 또한 문과 응시생에게 요구된 경학에 대한 이해, 문장 제술 능력, 현안에 대한 인식과 대책 마련의 능력 등은 급제의 필수 조건일 뿐이었고, 정치적 변화 속에서 응시생의 출신 지역이나 혈연, 혹은 당색이 급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평생 공부하여 문과에 응시한다고 해도 낙방(落榜)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문과급제는 응시생 본인의 노력은 물론 가족과 친지들의 고생과 기대의 결과였지만, 사람들은 급제자를 ‘새로 왕의 은혜를 입었다’고 해서 신은이라 불렀다. 신은이라는 명칭은 문과 급제자뿐만 아니라, 무과와 생원진사시의 급제자에게도 해당되었다(『영조실록』 41년 3월 10일). 문과에 급제한 신은들에게는 왕이 합격 증서를 수여하는 창방의(唱榜儀), 의정부에서 실시하는 축하 잔치인 은영연(恩榮宴) 등 많은 축하 행사가 기다리고 있었으며, 신은들은 사흘 동안 시가행진을 하는 유가(遊街)도 하면서 급제의 기쁨을 누렸다.

지방 출신의 신은들은 서울에서의 유가를 마치면 고향으로 돌아갔다. 각 지방에서는 신은들이 귀향하는 날 고을 사람들과 관원들이 모두 나와 환영하였고, 급제자들은 자기 고향에서도 유가를 하였다. 이 유가가 끝나면 신은들은 부모와 동네 어른들이 참석한 가운데 홍패를 모시고 일생의 만사형통을 비는 ‘홍패고사(紅牌告祀)’를 지냈다.

신은들이 자기 집에 도착하여서는 ‘자기 집에 도착하여 여는 잔치’라는 뜻의 ‘도문연(到門宴)’을 베풀었는데, 이때에는 가문의 친인척과 인근의 지인들을 모두 불러 모아 잔치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고을 수령은 급제자와 그의 부모를 관아에 초대하여 주연을 베풀었고, 부모가 돌아가신 급제자에게는 제물(祭物)을 마련해 주어 부모님의 묘소를 찾도록 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참고문헌

  • 차미희, 『조선시대 과거시험과 유생의 삶』,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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