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첩(小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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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공명첩(空名帖) 발급 과정에서 중앙 관사나 관찰사, 수령 등이 별도로 발급해준 문서.

개설

임진왜란 이후 조정에서는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량의 곡식을 받고 관직 임명장인 공명첩을 발급해주었다. 공명첩은 실직(實職)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왕명으로 품계를 부여해주는 교지(敎旨) 형식의 문서였으므로 상징성이 있었다. 이러한 공명첩을 발급하는 과정에서 중앙 관사나 지방의 관찰사 및 수령은 공명첩 수취 대상자에게 첩가(帖價)를 받은 사실과 공명첩을 최종적으로 전달해준 사실을 증빙하면서 소첩(小帖)이라 명명한 문서를 별도로 발급해주었다.

내용 및 특징

소첩은 문맥에 따라 자그마한 문서를 뜻하기도 하고, 명나라 관부에서 보내온 문서를 가리키기도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소첩의 용례는 대부분 선조 연간에 명나라 사신이 써서 보내온 소첩 등을 가리킨다(『선조실록』 26년 윤11월 23일). 그런데 해당 문서들은 실제 어떠한 형태로 작성된 문서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조선후기에 일반 백성들로부터 곡식을 받은 대가로 임명 문서인 공명첩을 내려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중앙 관사나 관찰사 및 수령이 발급한 소첩이라는 문서는 지금까지 실물로도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공명첩 발급 과정에서 작성된 소첩에 국한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조선후기 공명첩은 첩가를 정해놓고 이를 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판매하였다. 상황에 따라 공명첩을 사고자 하는 사람만큼 공명첩을 발급하기도 하였고, 반대로 공명첩을 일정 수량만큼 각 도에 배정해놓고 사고자 하는 사람을 모으기도 하였다. 최종적으로 사고자 하는 사람에게 공명첩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특정 관서에서 첩가를 받은 사실을 증빙하거나 최종적으로 공명첩을 제대로 지급했음을 증빙하는 문서인 소첩을 발급하였다.

변천

공명첩을 발급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소첩은 조선후기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발급 관서에 따라 기재 내용이나 작성 방식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형태적으로는 필사한 것도 있고, 목판에 새겨 인쇄한 것도 있다.

참고문헌

  • 최승희, 『(증보판)韓國古文書硏究』, 지식산업사, 1989.
  • 송철호, 「조선시대 帖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8.
  • 이정일, 「朝鮮後期 空名小帖에 대한 연구」, 『영남학』 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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