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요역(所耕徭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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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작하는 사유지인 소경전에 부과된 요역, 혹은 경작하는 사유지에 부과된 조세 일반.

내용

소경요역(所耕徭役)이란 경작하는 사유지인 소경전(所耕田)에 부과된 요역을 뜻하였다. 요역의 용어를 넓게 쓸 경우에는 공부(貢賦)·부세(賦稅)·부역(賦役)과 같이 부세 일반을 지칭하였다. 따라서 소경요역의 광의의 개념은 경작하는 사유지에 부과된 조세 일반을 뜻하였다. 협의의 개념으로 소경요역이라 한 것은 요역을 징발하는 기준이 개별 민호의 토지 소유면적에 있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소경전세(所耕田稅)가 전세를, 소경공부(所耕貢賦)가 공부를 뜻하는 것과 같은 표현 방식이었다. 세종대 이후 토지 소유면적을 기준으로 하여 요역이 부과되었고, 특히 성종대 이후 그러한 원칙이 법제화됨으로써, 다른 물납의 조세와 함께 전결을 단위로 한 수취 형태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소경요역이란 이같이 요역 징발의 기준이 전결에 있다는 것을 뜻하며, 소경전세·소경공부와 같이 전결에서 수취되는 3가지의 기본 세목 가운데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소경전잡역(所耕田雜役)이란 용어도 이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용례

兵曹啓 凡京役人 竝皆完護本家 獨鷹人未有完恤之典 今後番上之時則所耕徭役外雜役 例皆蠲減 從之 (『세종실록』 19년 3월 11일)

참고문헌

  • 강제훈, 「朝鮮初期 徭役制에 대한 재검토」, 『歷史學報』 145, 1995.
  • 김종철, 「朝鮮初期 徭役賦課方式의 推移와 役民式의 確立」, 『歷史敎育』 51, 1992.
  • 윤용출, 「15·16세기의 徭役制」, 『釜大史學』 10, 1986.
  • 有井智德, 「李朝初期の徭役」, 『朝鮮學報』 30·31,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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