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전(昭敬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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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의 첫 번째 비 공혜왕후(恭惠王后)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

개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宗廟)에 신주를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공혜왕후처럼 왕보다 먼저 승하한 왕후는 1년상인 기년상(期年喪)으로 치러져서 11개월에 연제(練祭)를 행하고 13개월에 상제(祥祭)를 행하며 15개월에 담제(禫祭)를 지냈다. 왕후의 신주는 배우자인 왕의 신주와 함께 종묘에 부묘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담제가 끝난 후에도 왕후의 신주는 혼전에 남아 있었다. 왕이 승하하여 3년상을 마친 후 함께 부묘하였다.

소경전(昭敬殿)은 성종의 첫 번째 비 공혜왕후의 혼전이다. 공혜왕후는 영의정(領議政) 한명회(韓明澮)의 딸이다. 1474년(성종 5) 공혜왕후가 승하하자 혼전의 전각명을 ‘소경(昭敬)’으로 정하고(『성종실록』 5년 4월 19일), 3개월 뒤 순릉(順陵)에 장례를 치렀다. 이후부터 1494년(성종 25) 성종이 승하하고 3년상을 치를 때까지 소경전에 신주가 봉안되어 있었다.

내용 및 특징

1474년 4월 15일 공혜왕후가 구현전(求賢殿)에서 승하하자 광연정(廣延亭)에 빈전(殯殿)을 마련하였다. 3개월 뒤인 6월에 순릉에 시신을 넣은 관인 재궁(梓宮)을 묻고 반우(返虞)하여 미리 마련한 혼전에 신주를 봉안하였다(『성종실록』 5년 6월 7일). 이때 조성한 혼전명이 소경전이다.

소경전을 어디에 설치했는가에 대한 기록은 『성종실록』에는 나오지 않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소경전이 ‘경복궁 안에 있으며, 성종과 공혜왕후의 혼전’이라고 되어 있다. 성종의 혼전은 ‘영사전(永思殿)’으로 별도로 있었다. 혼전이 존재한 동안 소경전은 공혜왕후를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였다.

소경전에서 거행한 의식은 반우한 날 초우제(初虞祭)를 시작으로 칠우제(七虞祭)까지 우제를 모두 지낸 뒤 졸곡제(卒哭祭)를 거쳐 연제, 대상제(大祥祭), 담제를 지냈다.

1497년(연산군 3) 2월 11일 영사전(永思殿)에 있던 성종의 신주와 소경전에 있던 공혜왕후의 신주를 옮겨 종묘 정전 제7실에 승부(陞祔)하고 부묘제(祔廟祭)를 지냈다. 따라서 소경전은 공혜왕후의 신주를 봉안하기 시작한 1474년 6월 7일부터 성종의 3년상을 마치고 종묘에 부묘한 1497년 2월 11일까지 설치되었다.

참고문헌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정옥자 외, 『조선시대 문화사』(상), 일지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