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장거자(色掌擧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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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무과 응시생 중에서 대표 격으로 뽑힌 자.

개설

색장거자(色掌擧子)는 시험에 응시하는 응시생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록 사료에 의하면 색장거자는 여러 종류의 과거 중에서도 무과(武科)와 관련된 부분에서 나왔다. 색장거자는 무과초시(初試)의 원활한 운영과 응시생의 부정행위를 막기 위하여 응시생 중에서 뽑은 대표였으며, 수거자(首擧子)가 응시생의 최고 대표라고 한다면, 색장거자는 부대표에 해당되었다.

내용 및 특징

색장(色掌)은 일반적으로 어떤 일의 사무를 관장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거자(擧子)는 과거에 응시하는 응시생을 말하였다. 따라서 이 두 단어를 합한 색장거자는 시험 응시생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무반 관료를 선발하는 무과에서는 급제의 조건 중의 하나가 무예(武藝)였으며, 이를 시험하기 위하여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식년시의 초시와 전시(殿試)에서 요구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화살 쏘기였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외침을 겪은 이후 식년시 이외에 부정기적으로 실시되는 별시(別試)가 빈번히 설행되고, 무과의 응시 자격이 완화되면서 무과 응시생이 급증하는 가운데, 부정행위도 많이 늘어났으며 이는 화살 쏘기 시험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변천

무과에서 무예(武藝)를 시험할 때 자행되는 응시생의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노력은 다양하게 전개되었는데, 특히 1차 시험에 해당되는 초시의 경우에는 수많은 응시생들을 모두 통제·감찰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응시생 가운데 대표들을 뽑아 이들의 도움을 받아 화살 쏘기를 시험할 때 부정을 막으려는 방안이 시도되었다.

그 방안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수많은 응시생들을 출신 지역에 따라서 몇 개의 집단으로 나누고, 그 응시생 집단 중에서 명망이 있어 이름이 알려진 사람을 수거자와 색장거자로 차정(差定)하여 응시생들을 통솔하게 하였다. 또한 화살 쏘기를 시험할 때에도 수거자와 색장거자로 하여금 통솔한 응시생 중에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대신 쏘게 하거나 다른 사람의 화살을 빌려서 쏘는 사람이 있는지를 감찰하게 하고, 만약 이것이 발각되면 부정행위를 한 응시생은 본인뿐 아니라 전 가족을 평안도나 함경도의 변방으로 이주시키는 전가사변(全家徙邊)에 처하고, 수거자와 색장거자에게도 책임을 물어 먼 변방의 군병(軍兵)으로 충당하였다. 문과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할 경우, 즉 다른 사람의 답안지를 내거나[借述] 대필을 시켰거나[代述]을 시켰거나 심부름꾼을 함부로 데리고 들어간 자가 유학(幼學)이면 당사자에 한하여 수군으로 채워 넣고 과거 응시를 영원히 정지시켰으며, 생진(生進)이나 조관(朝官)이면 먼 변방의 군졸로 충당하는 등의 처벌을 받았다(『숙종실록』 8년 6월 20일).

참고문헌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무과총요(武科總要)』
  • 나영일, 『『무과총요』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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