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무공신(奮武功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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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로로 영조대에 책봉된 공신

내용

1728년(영조 4) 3월 이인좌 등이 왕세제였던 연잉군이 경종을 암살하였다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발생 후 10여 일이 지나 진압되엇으며,(진압되었으며,) 주모자인 이인좌는 3월 23일에 안성에서 오명항이 인솔한 군사들에게 패배하여 산속의 절로 도피하였다가 24일에 스님들에게 포박당하여 포로가 되었다. 영조는 3월 26일에 창덕궁 인정전으로 직접 나가서 이인좌를 심문하였다. 이인좌는 역모 사실을 대부분 그대로 시인하였다. 다음 날 이인좌는 백관들이 둘러선 가운데 군기시 앞길에서 거열형을 당하였다. 이해가 무신년이었으므로 이 사건을 무신난 또는 이인좌의 난이라고 하였다.

같은 해 4월 26일에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분무공신 15명이 책봉되었다. 1등은 수충갈성결기효력분무공신(輸忠竭誠決幾效力奮武功臣)이라고 하였는데 오명항 1명이었다. 수충갈성결기분무공신(輸忠竭誠決幾奮武功臣)이라 불린 2등은 박찬신·박문수·이림 등 7명이었으며, 수충갈성분무공신(輸忠竭誠奮武功臣)이라 불린 3등은 이수량·이익필·김협 등 7명이었다.

용례

定勳號 輸忠竭誠決幾效力奮武功臣(『영조실록』 4년 4월 26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국조공신록(國朝功臣錄)』
  • 『당의통략(黨議通略)』
  • 신명호, 『조선의 공신들』, 가람기획,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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