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련사(寶蓮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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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 국가에서 공인한 36사(寺) 가운데 하나로, 충주 지역에 있던 절.

개설

보련사(寶蓮寺)는 조선초기 충주 지역의 유력 사찰이었고, 세종대 선·교 양종의 교종 18개사 가운데 하나였다. 성종대에 보련사의 사위전(寺位田)이 여주신륵사(神勒寺)로 옮겨진 이후에는 관련 기록이 보이지 않으며, 점차 쇠락해져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및 변천

보련사의 연원과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는 남아 있지 않지만, 조선 세종대에 선·교 양종 36개 사찰에 포함된 것으로 보아 규모가 크고 중요한 사찰이었음은 분명하다. 앞서 태종대에는 11개 불교 종파를 7개로 축소하였고 1424년(세종 6) 세종은 기존의 7개 종단을 선·교 양종으로 나누고 각각 18개씩 36개 사찰만 공인하였는데, 이때 보련사는 교종 18사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보련사에는 원래 보유 전답 80결에 70결이 추가로 지급되어 150결이 인정되었고 거주하는 승려는 70명으로 정해졌다(『세종실록』 6년 4월 5일). 당시 공인된 36개 사찰의 대부분은 도 단위 이상에서 지정되었고, 그 중 20개 이상이 왕실 관련 사찰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 충주목 항목에도 보련사는 교종 사찰이며 전지 150결이 지급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보련사는 세종대까지 충주를 대표하는 주요 사찰로서 국가로부터 공인된 선·교 양종 36개 사찰에 들어갈 만큼 높은 사격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성종대에 보련사의 위전 140결이 장의사(藏義寺) 위전 100결과 함께 여주신륵사(神勒寺)로 옮겨지면서(『성종실록』 5년 7월 15일) 사세가 기운 것으로 보인다.

이후 보련사에 대한 공식 기록은 확인되지 않으며 현재 충주에 같은 이름을 가진 보련사가 있을 뿐이다.

참고문헌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 한우근, 『유교정치와 불교-여말선초 대불교시책』, 일조각,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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