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犯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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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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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범야 |
한글표제 | 범야 |
한자표제 | 犯夜 |
관련어 | 야금조(夜禁條), 인정(人定), 순장(巡將), 감군(監軍) |
분야 | 정치/사법/죄목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조지만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범야(犯夜)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5년 9월 14일 |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위배한 죄 및 그 처벌.
내용
『대명률』 「병률(兵律)」 군정편(軍政編) 야금조(夜禁條)에는 1경(更) 3점(點)부터 5경 3점 사이를 통행금지 시간으로 정하여 이 시간에 통행하는 이들을 처벌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즉 1경 3점에 종소리가 이미 끊어진 때, 5경 3점에 종소리가 아직 들리지 않은 때에 통금을 어긴 자는 태(笞) 30에 처하고 2경, 3경, 4경에 통금을 범한 자는 태 50에 처하게 했다.
조선 왕조에서도 ‘인정(人定)’이라고 하여 1경 3점에 28번의 종을 울려서 통금 시간을 알리고, 5경 3점에 33번의 종을 쳐서 통금을 해제하였고, 이러한 통금 시간을 위반한 자들을 처벌하고 있었다.
1401년(태종 1)에는 통행금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던 대사헌(大司憲)이원(李原)이 파직(罷職)되었다. 영조 연간에는 통행금지가 상당히 엄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1770년(영조 46)에 영조는 순장(巡將)과 감군(監軍)들이 야간 순찰 때 유생(儒生)과 조사(朝士)를 잡지 않았다며 그들의 죄를 꾸짖고 3차례 조리돌림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통행금지를 위반한 자들도 모두 곤장(棍杖)을 때려 충군(充軍)시킬 것을 명했다. 1792년(정조 16)에는 정조가 자신의 환궁(還宮)을 구경하는 백성을 위해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하기도 하였다.
용례
禁衛營 以武藝別監昔敬源犯夜啓 敎曰 近來夜禁蕩然 掖隷無難犯之 卿營能爲捕捉 卿則內下弓子一張賜給 該巡牌將 令本營施賞(『정조실록』 5년 9월 14일)
참고문헌
-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 『대명률강해(大明律講解)』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