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別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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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방에서 치르는 시험 또는 비정기적인 시험을 지칭하는 말.

개설

증광시·알성시·정시 등 비정기 시험을 별과라 지칭하기도 하였으나 일반적으로는 평안도·함경도·강화·제주 등 외방(外方)에 설행되는 시험을 말하였다. 별시와 혼용되기도 하였다. 문과와 무과만 설행하며 왕의 특지가 있어야 했다.

내용 및 특징

“근래에 별과를 자주 설행한다(『중종실록』 21년 9월 28일).”, “조종조 때에는 삼년 대비(三年大比) 외에는 다른 별과가 없었다(『효종실록』 3년 7월 17일).”처럼 식년시 외의 부정기적인 시험을 별과라 지칭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증광시·알성시·정시를 별과라 지칭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다.

1651년(효종 2) 12월 26일의 실록 기사에는 예조가 세자의 가례와 대역 죄인을 섬멸한 것을 이유로 별과를 설행할 것을 청하였다. 서울에 시험장을 3곳으로 나누고 강경시험은 면제하여 각각 200명을 뽑도록 하였다(『효종실록』 2년 12월 26일). 이 시험과 관련된 방목을 『국조문과방목』에서 찾아보면 1652년의 「임진증광방」이었다. 증광시를 별과로 지칭한 사례이다.

계명대학교 소장의 1726년 『병오알성별과문무과방목(丙午謁聖別科文武科榜目)』에서는 알성시를 별과로 지칭하였다. 1519년에 시행된 현량과(賢良科)를 별과로 칭한 사례도 있었다(『중종실록』 15년 1월 15일).

이보다 별과는 외방에서 설행되는 시험을 말하였다. 『속대전』 「예전」 제과조에 의하면 외방별과는 평안도·함경도·강화·제주 등지에는 특지가 있어야 설행한다고 하였다. 정원은 그때그때 왕의 품지에 따라 정하고 시험 과목은 증광전시와 같았다. 중신(重臣)을 파견하여 시험을 치르면 그 지방에서 방방하게 하고, 어사를 파견하면 시권을 거두어 중앙으로 올려 보내 채점하고 합격자에게는 전시에 바로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국조문과방목』에서 세조대부터 지방에서 설행된 60여 회 과거의 과명(科名)을 보면 별시·정시·별과로 나누어졌다. 조선초부터 대부분의 시험을 별시라 칭하였으며, 별과는 1717년(숙종 43)에 비롯되어 영조 연간과 철종 연간에 지칭한 경우가 보였다. 『속대전』에서 외방별과로 법제화되었지만 영조 이후에도 외방에서 실시한 시험은 별시와 별과의 엄격한 구분 없이 혼용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별과와 해당 시험의 방목을 비교해 보면 별과와 별시를 혼용하고 있었다. 1695년(숙종 21) 평안도 별과에서 문과에 전처경(田處坰) 등 4명을 뽑았다 하였는데(『숙종실록』 21년 2월 25일), 『국조문과방목』에는 「을해평안도별시방」으로 되어 있었다.

별과는 지방과 서울에서 같이 설행되기도 하였다. 1763년(영조 39) 왕이 교서(敎書)를 선포할 때에 유생(儒生)이 참여한 것은 3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하여 별과를 설행하였다. 서울에서는 임희증(任希曾)을 뽑고 지방에서는 정수덕(鄭粹德)을 뽑아 모두 직부전시하게 하였다(『영조실록』 39년 10월 4일). 직부전시된 임희증과 정수덕은 같은 해에 설행된 계미 증광시에 각각 병과(丙科) 15위, 병과 19위로 급제하였다.

별과는 문과와 무과가 함께 설행되는 때도 있지만 문과 또는 무과 하나만 설행되기도 하였다. 1835년(헌종 1) 헌종은 춘당대(春塘臺)에서 별과를 설행하고 한계원(韓啓源) 등 5명을 선발하였다(『헌종실록』 1년 9월 28일). 1838년 함경도 별과 무과에서 허적(許樀) 등 207명을 뽑았다(『헌종실록』 4년 10월 12일).

별과의 인원은 문과에서는 3~4명에서 5~6명 정도로 10명 미만이나 무과는 훨씬 많은 인원을 뽑았다. 별과 설행의 목적은 대체로 해당 지역의 선비와 무사들을 격려하고 위무하는 데 있었다. 또한 전란 중에는 인심을 수습하고 병사를 얻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변천

식년시 이외의 비정기적인 시험을 별과라 칭하기도 하였으나, 외방에서 실시하는 별시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속대전』에 와서 외방별과에 대한 법규가 정비되었다.

참고문헌

  • 『속대전(續大典)』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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