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패(網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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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제사에 쓸 새와 짐승을 진상하기 위해 동원된 사냥꾼.

개설

사복시(司僕寺)나 강무장(講武場)에 소속되어 국가 제사에 필요한 사슴이나 노루 등 새와 짐승을 잡아 진상하는 역을 담당하였던 사냥꾼과 몰이꾼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내용 및 특징

사복시에서는 국가의 각종 제사에 쓸 고기를 마련하기 위해 망패와 좌우패를 두었다. 망패는 사냥에 사용하는 그물을 맡은 사람들이며, 좌우패는 좌우에서 사냥감을 몰아가는 몰이꾼으로 사복시에 30명을 두었다. 사복시에서는 그들을 거느리고 사냥처에 가서, 그곳 지리를 잘 아는 현지 길잡이를 동원하여 제수를 마련하였다. 또 강무장에 소속된 망패들은 각기 특정 제사에 사용되는 제수용 고기를 진상하는 역을 맡고 있었고, 그들은 사냥을 해서 이를 공급하였다. 예를 들어 철원에 있는 강무장에는, 지키는 사람과 망패 90명을 두어 제수용 고기를 사냥하게 하였다.

변천

사복시에 소속된 망패들은 조선초기에는 주로 서울 교외나 경기에서 사냥을 하였다. 가까운 지역에서 사냥을 하여 신선한 상태로 제수를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5세기 말이 되면 계속되는 포획으로 서울 교외나 경기 지역에 사냥감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점차 강원도나 황해도로 사냥 지역이 확대되었다. 이때 사복시 관원은 망패 30여 명과 말 30여 필을 거느리고 가고 또 현지에서 길잡이로 50명을 동원하여 사냥을 하였다. 그런데 망패와 길잡이 80명, 그리고 이들의 양식은 모두 해당 지역 주민들이 부담하였기 때문에 폐단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사냥터와 서울 사이의 거리가 멀어 수송하는 과정에서 제물이 상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1451년(문종 1)에는 사냥한 고기를 포로 만들어 수송하게 하였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1500년(연산군 6)에 망패를 동원해 제사에 쓸 고기를 사냥해서 진상하는 제도를 폐지하였다. 대신 제수용 고기는 시중에서 구입하여 사용하게 하였다.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