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회시(都會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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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지방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실시한 과거 시험.

개설

도회시는 매년 봄과 가을에 도회(都會)를 열고 유생들에게 강경 또는 제술 시험을 시행하여 성적이 우수한 사람을 뽑아 초시를 거치지 않고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시험이었다. 유생들의 권학을 목적으로 실시하는 시험으로 서울의 성균관과 사학(四學), 지방 향교의 유생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봄철에 여는 것을 춘등도회(春等都會), 가을철에 여는 것을 추등도회(秋等都會)라고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초에는 진사시 직부(直赴)가 없었다. 지방의 각 도의 도회에서 경서를 시험 보게 하여 우등한 사람에게 생원시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도별로 3명씩 뽑았다(『세종실록』 15년 5월 17일). 1444년(세종 26) 진사시가 폐지되었다가 1453년(단종 원년) 복설된 이후에는 제술 시험으로 진사시 복시에도 직부할 수 있었다. 각 도의 관찰사가 매년 6월에 도회를 열어 재행(才行)이 있는 교생을 한곳에 모아 4학의 도회의 예에 따라 강경 또는 제술로 시험 치러 우등한 사람에게 생원시와 진사시의 복시에 바로 응시할 수 있게 하였다. 경상도·전라도·충청도는 각각 5명을 뽑고 그 밖의 도는 각각 3명을 뽑았다(『성종실록』 3년 5월 23일). 세종대보다 도별 인원이 늘어났다. 매년 6월에 여는 도회를 ‘6월 도회’라고 하였다.

서울은 사학의 유생들 각 20명씩을 택하여 매년 6월에 남학(南學)에 모아 3품 이하의 문관 3명이 강경 또는 제술을 시험 치러 우수한 사람 10명을 생원시와 진사시의 복시에 바로 응시하게 하였다.

성균관의 도회는 3월 3일과 9월 9일에 의정부·육조 및 성균관의 당상관이 시험을 실시하여 우등자 3명을 선발하여 문과의 복시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1년에 봄가을 두 차례 열리던 성균관의 도회가 성종대에는 매달 열리는 폐단이 있었다. 폐단을 해결하기 위하여 1472년에 도회는 세종대나 세조대처럼 3월 3일과 9월 9일에 여는 것을 항식으로 삼도록 하였다(『성종실록』 3년 10월 11일).

각 도에서뿐 아니라 부(府)에서도 도회시를 설치하였다. 1475년(성종 6) 개성부유수가 여름에 도회를 열어 우등한 사람에게 생원시와 진사시의 복시에 직부하도록 하였다(『성종실록』 6년 5월 10일).

도회시는 초시에 준하는 시험으로 한성시나 향시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사학과 향교의 유생은 생원시와 진사시 복시에, 성균관 유생은 문과 복시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생원시와 진사시는 복시가 최종 단계의 시험이어서 복시 통과는 최종 합격을 의미하였다. 문과는 복시에 합격하고 난 다음 전시에 응시해야 하지만 전시는 당락을 결정하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에 복시 통과는 곧 문과 급제를 의미하였다.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