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군전(大將軍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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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의 앞부분에 꽂아 화약의 힘으로 발사되는 화살 모양의 대형 발사체.

개설

대장군전(大將軍箭)은 길이 6자에 무게 50근인 쇠와 나무를 이용해 만든 화살이다. 발사 시에는 화약 30근이 사용되었는데, 약 900보였다. 따라서 대장군전을 발사하기 위해서는 화기와 화약 제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야 했다. 화약이 없으면 10만 개의 대장군전도 무용지물이었다(『선조실록』 26년 11월 21일).

여말선초의 왜구 격퇴 시 개발된 화기와 발사물은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태조대에는 대장군(大將軍), 이장군(二將軍), 삼장군(三將軍), 육화(六火), 석포(石砲), 신포(信砲), 화포(火砲), 화통(火㷁), 화전(火箭), 철령전(鐵翎箭), 피령전(皮翎箭), 질려포(蒺藜砲), 철탄자(鐵彈子), 찬산(穿山), 오룡전(五龍箭), 유화(流火), 주화(走火), 촉천화(觸天火) 등의 화기들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화기는 대장군전과 같이 화살 형태를 발사하는 방식, 철환(鐵丸) 또는 돌이 폭발하는 방식, 철환이 폭발하는 방식 등 세 종류의 발사체를 이용하였다. 따라서 화기의 이름이 총(銃)과 통(筒)인 것은 소형인 경우가 많고, 포(砲)라고 할 때는 대형 화기가 많다. 대장군전도 이장군과 삼장군에 비추어 그 크기에 맞게 명명했다.

내용 및 특징

대장군전은 해상에서 적의 선체를 파괴하고 침수시키거나 집단대형을 갖추어 공격하는 기병의 대열을 분쇄하는 용도였다. 즉 개별적인 개체를 상대로 발사하던 무기가 아니라 집단으로 공격하여 적의 예봉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였다.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당시 왜군이 창궐하자 왜적의 전선을 격파하는 기구로 대장군전이 가장 좋다고 평가되었다. 하지만 이를 발사할 총통이 부족하여 궁여지책으로 사찰의 종을 사용하였다(『명종실록』 10년 7월 22일). 대장군전은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명나라의 탄환은 200보, 왜군의 탄환은 100보를 발사했으나 대장군전은 6리(약 2.4㎞)까지 발사할 수가 있었다(『선조실록』 25년 12월 13일).

변천

대장군전은 광해군대에도 여전히 제조되었다. 대장군전은 전쟁에 사용하기에 용이한 화기로 인식되어 진천뢰(震天雷), 독시(毒矢), 석류화전(石榴火箭)과 같이 군기시(軍器寺)와 훈련도감에서 충분히 만들어 비축하도록 했다(『광해군일기(중초본)』 10년 7월 1일). 그러나 조선후기로 갈수록 대형 화살류의 무기보다는 철환이 더 많이 사용되면서 대장군은 사라져 갔다.

참고문헌

  • 육군본부, 『한국군사사』, 경인문화사, 2012.
  • 허선도, 『조선시대 화약병기사 연구』, 일조각, 1994.
  • 박혜일·이유찬, 「天字銃筒에서 쏜 大將軍箭의 彈道와 龜船에 있어서의 有效射距離의 推定」, 『한국과학사학회지』11권 제1호,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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