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역(德山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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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도 김해에 위치했던 역.

개설

덕산역(德山驛)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동쪽 37리(약 14.5㎞)에 위치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김주(金州: 현 김해)에 위치하였으며, 김주도(金州道) 소속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자여도(自如道) 소속의 역(驛)으로 편성되었다가 황산도(黃山道)로 이속되었다.

내용 및 변천

덕산역은 고려시대에 김주도 소속이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자여도 소속으로 편성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덕산역은 자여도 소속의 역으로 기록되어 있다[『세종실록』 지리지 경상도]. 1462년(세조 8) 전국적인 역도제(驛道制)의 개편 때에도 덕산역은 자여도 소속으로 편성되었고(『세조실록』 8년 8월 5일),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여지도서』에는 덕산역이 황산도 소속으로 수록되어 있고,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의하면, 정조 연간에 편찬되는『대전통편(大典通編)』에서부터 황산도 소속으로 기록되었으므로, 『속대전(續大典)』이 편찬된 1746년(영조 22) 이후로부터 『여지도서(輿地圖書)』가 편찬된 1757년(영조 33)~1765년(영조 41) 사이 어느 시기에 자여도에서 황산도로 이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덕산역에는 대마(大馬) 1마리, 중마(中馬) 2마리, 복마(卜馬) 8마리, 역리(驛吏) 20명, 역노(驛奴) 5명이 배속되어 있었는데, 역노는 도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덕산역은 서쪽의 김해, 동쪽의 양산 및 동래 등과 연결되는 교통로상에 위치하였다. 덕산역에서 서쪽으로는 김해의 남역(南驛), 동쪽으로는 낙동강 하구를 건너 양산의 황산역(黃山驛) 및 동래의 소산역(蘇山驛) 등과 연결되었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덕산역도 폐지되었다.

덕산역의 위치는 현재 행정 구역으로는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덕산리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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