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사(大院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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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참기를 지어 벽돌에 새겼던 충주 지역의 사찰로, 현재는 폐사됨.

개설

충주에 소재한 미륵대원사지(彌勒大院寺址)는 신라말에 창건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찰로서 면모를 유지하던 곳이었다. 신라시대 유물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명문(銘文)도 발견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숙종대에 이동석(李東奭)이 대원사에 머물며 풍수설에 입각하여 예언을 기록한 참기(讖記)를 지어 벽돌에 새겼다가 국청(鞫廳)을 받은 일이 있었다.

내용 및 특징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대원사(大院寺)는 충주시 수안보면에 소재한 미륵대원사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대원사지에서는 오층석탑(보물 제95호), 석불입상(보물 제96호), 석등(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 철조여래좌상(보물 제98호), 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 비석받침, 당간지주, 기와편 등이 발굴되었는데, 대부분의 유물은 고려시대의 것으로서, 미륵불을 봉안한 석굴 형태의 독특한 가람 구성을 보인다. 이는 고려시대에 대원사가 조령의 길목에 위치하여 중요한 가람으로 활동했던 것을 말해 준다. 가장 오래된 유물의 조성 시기를 10세기로 추정하므로 대원사는 신라말에 창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원사에서 발굴된 기와편에서 ‘명창삼년대원사주지승원명(明昌三年大院寺住持僧元明)’이라는 명문(銘文)이 발견되었다. 명창 3년은 1192년(고려 명종 22)이므로 고려시대에 중수(重修)되었음을 명문을 통해 알 수 있다. 그 후 대원사와 관련한 기록이 보이지 않다가 조선시대 숙종대에 충주 사람 이동석(李東奭)이 풍수설(風水說)에 입각하여 예언을 기록한 쓴 참기를 지어 벽돌에 새겼다가 국청을 받은 일이 있었다(『숙종실록』 39년 12월 9일). 그는 국청에서 말하기를, 대원사에 머물며 승려 도형(道泂)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대원사에 성을 쌓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여겨 참어(讖語)를 지어내었다고 진술하였다(『숙종실록』 40년 2월 19일).

참고문헌

  • 신영훈, 「미륵대원의 연구」, 『미술사학연구』146, 한국미술사학회,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