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흥사(廣興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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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학가산(鶴駕山)에 있는 절.

개설

광흥사(廣興寺)는 신라 문무왕 때 승려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 절에서 승려들이 유생들을 폭행하여 상해를 입힌 일이 발생하였고, 그 처벌 문제로 왕과 신료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이 절에서 간행된 『취지금니묘법연화경(翠紙金泥妙法蓮華經)』이 보물 제314호로 지정되었으며, 『백지묵서묘법연화경』이 보물 제315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내용 및 특징

(1)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광흥사를 다녀간 이산해(李山海)는 절의 서쪽 물가의 감나무 정자가 있는 곳이 이 절의 빼어난 경관이라고 극찬하였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 광흥사는 유교와 불교가 충돌하던 현장이기도 하였다. 1565년(명종 20) 경상감사이택(李澤)은 광흥사와 봉정사(鳳停寺), 두 절의 승려가 유생을 접대하는 것을 싫어하여 밤중에 접대를 받은 유생 장흡(將洽) 등을 상해했으니 엄히 국청(鞠廳)에서 형장(刑杖)을 가하여 중죄인을 신문하여 죄를 다스려 달라고 계본(啓本)을 올렸다. 왕은 절의 승려들이 유생을 능욕하는 일이 더러 있지만, 유생 역시 공자(孔子)의 도를 본받으면서 그 도를 잃고 승려들을 너무 심하게 미워하는 버릇 또한 있다고 지적하였다. 결국 왕은 승려들을 엄히 국문하지 말고 법에 따라 적절하게 다루도록 명하였다(『명종실록』 20년 3월 13일). 그러나 사헌부는 승려들이 유생을 구타한 것은 근래에 없던 매우 놀라운 일인데, 왕이 잘잘못이 분명하지 않은 일이라 치부하며 엄하게 국문하지 말고 적당하게 다루도록 명한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라고 하였다. 사헌부의 거듭된 국문 요청에도 왕은 잘잘못이 분명하지 않으니 추국할 필요 없이 적정하게 처리하라고 거듭 명하였다. 그러나 사헌부와 사간원까지 나서 여러 차례 엄중한 처벌을 거듭 요구하자 왕은 결국 엄히 다스리도록 하였다(『명종실록』 20년 3월 14일).

그 후 부제학김귀영(金貴榮) 등이 상소문을 올려 승려들을 옹호하는 왕명에 문제제기를 하였다. 김귀영은 근래 승려의 무리들이 방자해져서 세력을 믿고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지적하고는 광흥사와 봉정사, 두 절의 승려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는다면 이후의 폐단은 더욱 심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명종실록』 20년 3월 14일).

조선전기의 불교 정책과 승려들에 대한 대우는 점차 혹독하게 변하여 노골적인 탄압으로 이어졌다. 승려들로 하여금 양반들의 가마를 지게 하는 일은 일반적이었고, 절을 그들의 유흥 장소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결국 승려들의 사회적 지위를 천민층으로 하락시켰다.

(2) 근현대

광흥사는 안동 지역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사찰로 꼽히던 곳이지만, 근현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 1946년 화재로 대웅전이 소실되고 1954년에는 극락전이 무너졌으며, 1962년에는 학서루와 대방이 무너졌다. 2013년에는 명부전 시왕상[十王像]들을 개복하는 과정에서 고려말과 조선초에 간행된 15상자 분량의 고서 200여 점을 찾기도 하였다. 특히 광흥사에서 발견된 『월인석보』 권7, 권8, 권21은 세조 때인 1464년 간행한 초쇄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월인석보』의 경우 임진왜란 이후 없어진 ‘아래아’와 ‘여린희읗’, ‘반치음’ 등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글 사용 원리에 따라 최초로 제작된 초간본으로 추정되어 한글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 『아계유고(鵝溪遺稿)』
  •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 김영태, 『한국불교사』, 경서원, 2008.
  • 이정 편저, 『한국불교사찰사전』, 불교시대사, 1996.
  • 한우근, 『유교정치와 불교』, 일조각, 1993.
  • 이규대, 「조선초기 불교의 사회적 실태; 령동지방 사원을 중심으로」, 『국사관론총』제56집, 국사편찬위원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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