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人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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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해살이풀로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삼의 뿌리.

개설

인삼(人蔘)은 자연산 산삼(山蔘)과 산에 종자를 심어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캐낸 산양삼(山養蔘), 그리고 밭에서 길러낸 가삼(家蔘)을 총칭하는 용어이다. 학명으로는 파낙스 진셍(Panax ginseng C. A. Meyer)이라 하여, 운남성과 광서성 일대에서 생산되는 전칠삼(田七蔘, Panaxnotoginseng F. H. Chen), 미국과 캐나다에서 나는 화기삼(花旗蔘, Panax quinquefolium L.), 일본의 죽절삼(竹節蔘, Panax japonicus C. A. Meyer) 등과 구분한다.

형태 및 생태

키가 50~60㎝이다. 짧고 두툼한 뿌리줄기 위쪽에서 줄기가 곧게 나오며, 아래쪽에서 두툼하나 갈라지지 않는 원뿌리가 나온다. 원뿌리에 곁뿌리가 몇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잎은 5장의 잔잎이 손바닥 모양으로 배열된 겹잎으로, 뿌리줄기에서 나온 줄기에 달리는데 1년생은 1장이다. 해마다 1장씩 늘어 수확기가 되는 5~6년이 지나면 5~6장이 달린다. 싹이 나온 지 3년이 지나 연한 녹색의 꽃이 4~5월쯤 줄기 맨 위쪽에 만들어진 산형(傘形) 꽃차례로 무리지어 핀다. 꽃받침잎, 꽃잎 및 수술은 각각 5개이며, 암술머리는 2갈래로 갈라져 있다. 열매는 붉게 무리지어 익는다.

역사적 관련 사항

인삼은 일명 ‘신초(神艸)’ 혹은 ‘지정(地精)’으로 불렸으며, 기사회생(起死回生)의 귀한 약재, 백초(百草) 중의 영물(靈物)로 인식되던 약용 특산물이다. 인삼은 어떻게 생산하는가에 따라 자연삼과 재배삼으로 구분한다. 자연삼은 산의 정기로 자생하는 것으로, 산삼이라 불렀다. 재배삼은 밭에서 4~6년을 길러 수확하는 것으로 가삼이라 불렀다.

산삼은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서 산출되었다. 『임원경제지』에서는 이를 지역으로 구분하여 영남과 호남에서 나는 것은 나삼(羅蔘), 관서·강원·강계 등에서 나는 것은 강삼(江蔘), 관북에서 나는 것은 북삼(北蔘)이라 부른다고 했다. 인삼의 품질로는 나삼을 최고로 치고 영동·강계·함경 지역 인삼을 그 다음으로 쳤다.

산삼은 그 약효 때문에 일찍부터 인삼 상인[蔘商]에 의해 해외로 수출되었다. 그렇지만 인삼이 본격적인 무역 상품으로써 경제적 비중과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엽부터이다. 국내 최대 인삼 산지였던 강계에서 캐낸 인삼은 모두 사상의 손에 들어가 북경으로 팔려 나갔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는 『동의보감』을 비롯한 조선의 각종 의학서가 알려졌고 이에 따라 인삼의 효능에 대한 인식이 한층 높아졌다. 자연히 조선 인삼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일본인의 풍속에 병이 생기면 반드시 인삼을 쓰니, 만약 무역을 막으면 죽을 각오로 다투어 사단이 일어날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교역을 허락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17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인삼은 비록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이지만 상인 놈들이 북경과 동래로 옮겨 팔기 때문에 자연히 국내에서는 희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인삼의 80~90%가 일본으로 넘어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삼의 대량 채취와 수출이 계속되면서 국내의 인삼 품귀 현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인삼의 판매 이익을 노린 상인들이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인삼을 매점매석 한 뒤에, 여러 재료를 섞어 인삼 10근을 20근으로 만들고 100근을 200근으로 만들어 왜관으로 팔아넘기는 ‘위조인삼 제조사건’이 일어났다. 또 강삼과 북삼을 물론하고 우리나라 토지에서 생산되는 것이 매년 점차 희귀해졌으니, 중국산 인삼[胡蔘]을 수입하여 국내 유통 물량을 조달하고 일본과의 외교에 들어가는 예단삼도 마련하자는 논의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인삼 품귀의 원인은 두말할 것 없이 국내외의 높은 인삼 수요에도 불구하고, 공급을 인삼 채취에만 의존함으로써 자원이 고갈된 탓이었다. 따라서 조선 사회는 인삼 자연 채취 단계에서 인삼 재배 단계로의 진입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인삼 종자를 밭에 심어 재배하는 가삼이 출현하였다.

참고문헌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홍재전서(弘齋全書)』
  • 『중경지(中京誌)』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차수정, 「조선후기 인삼무역의 전개과정-18세기 초 삼상의 성장과 그 영향을 중심으로-」, 『북악사론』1, 1989.
  • 이철성, 『조선후기 대청무역사 연구』, 국학자료원, 2000.
  • 정성일, 『조선후기 대일 무역』, 신서원, 2000.
  • 유승주·이철성, 『조선후기 중국과의 무역사』, 경인문화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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