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유원(儼有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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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호막부 제4대 장군 덕천가강의 시호.

개설

덕천가강(德川家康)은 강호막부 제3대 장군 덕천가광(德川家光)의 장남으로 1641년 8월 3일에 태어났다. 1651년 덕천가광이 사망한 후 11세의 나이로 장군이 되었다. 그 후 30년에 걸쳐 장군직에 있다가 1680년 5월 8일 4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법호는 엄유원이며, 묘는 동경(東京) 상야(上野)의 관영사(寬永寺)에 있다.

변천

강호막부의 장군직에 있었던 덕천장군가 역대의 묘소를 덕천가영묘(德川家霊廟)라고 한다. 강호(현 동경)의 관영사와 증상사(增上寺), 일광(日光)의 윤왕사(輪王寺)에 있다. 일광동조궁(日光東照宮)과 함께 강호시대의 화려한 건축기술과 의장(意匠)의 최고 정수가 모여 있는 건축군이다. 강호시대를 대표하는 호화로운 조각이 장식되어 있었으나 이 가운데 엄유원의 묘가 있는 관영사와 증상사의 영묘는 대부분의 건물이 1945년 3월 10일 일본을 무력화시키고 전쟁의 조기 종결을 위하여 미군이 일본의 수도인 동경과 그 주변 일대에 대량의 소이탄을 투하한 동경대공습 때 소실되었다.

1681년 덕천가강의 뒤를 이어 제5대 장군으로 취임한 덕천강길의 취임 축하를 위해서 파견될 통신사행의 절목에 관한 논의가 조선 조정에서 있었다. 동래부사(東萊府使)가 강호에서 보내온 통신사행의 절목을 치계(馳啟)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예조에서 엄유원이란 곧 일본의 선대군(先大君)의 묘호(廟號)인데, 어필(御筆)의 편방(扁牓)을 얻기를 청하는 것은 전례가 있기는 하나 일이 매우 중대하니 비변사에 논의하게 하라고 요청하였다. 또 권현당(權現堂)·대유원(大猷院) 두 곳에는 분향만 해야 하고 엄유원에는 치제(致祭)한다 하였으니, 이에 따라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하여 허락을 받았다(『숙종실록』 8년 1월 15일).

참고문헌

  • 國史大辭典編集委員會, 『國史辭典典』, 吉川弘文館, 1999.
  • 『日本大百科全書』, 小學館,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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