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악군(安岳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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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서북부 지역에 있으며 동쪽으로 황주·봉산·재령, 남쪽으로 신천, 서쪽으로 은율·문화, 북쪽으로 대동강을 경계로 평안도 용강에 접하는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안악군(安岳郡)은 고구려 때 양악군(楊岳郡)으로 설치되었다. 고려 때 양악현이 되었으며, 한때는 원나라 동녕부에 예속되었다. 조선 건국 후 안악군이라 이름 붙여진 이후 조선말까지 읍격의 승강이나 강역의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양악군이었으며, 통일신라시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도 그 명칭이 계승되었다. 고려시대 1018년(신라 현종 9)에 풍주의 속현이 되었고, 1106년(신라 예종 1)에 독립하여 감무가 파견되었다. 1270년(신라 원종 1)에 원나라 동녕부에 예속되었다가 8년 후에 다시 수복되었다. 1348년(신라 충목왕 4)에 문하찬성사황순(黃順)의 처향(妻鄕)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고 지군사(知郡事)가 파견되었다.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에 황해도 안악군으로 확정되었으며, 군수가 보임되었다.

조직 및 역할

종4품 군수가 다스렸으며 시위군 30명, 영진군 82명, 선군 319명이 소속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영장제가 시행된 후에는 군수가 중영장토포사(中營將討捕使)를 겸하였으며 좌수 1명, 별감 3명, 도감 5명, 방영군관 50명, 토포군관 30명, 아전 50명, 지인 23명, 사령 35명, 관노 27명, 관비 28명이 있었다.

변천

1804년(순조 4)에 역적 이달우(李達宇)가 태어난 곳이라 하여 현으로 강등되었으며(『순조실록』 4년 9월 23일), 1813년(순조 13)에 다시 군으로 회복되었다(『순조실록』 13년 1월 2일). 1895년(고종 32)에 전국 23부제 시행 때 해주부 안악군이 되었고, 이듬해에 13도제 시행으로 황해도 안악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황해도(黃海道) 안악군(安岳郡)
  • 『여지도서(輿地圖書)』황해도(黃海道) 안악(安岳)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