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토왕국(投謝土王國)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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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투사토왕국 |
한글표제 | 투사토왕국 |
한자표제 | 投謝土王國 |
상위어 | 동몽골[東蒙古], 호르친([科爾沁], Qorčin) |
동의어 | 투시에투 왕 호쇼[土謝圖王旗] |
관련어 | 논호르친(Non Qorčin), 빈토왕국(賓土王國), 아르호르친(Aru Qorčin), 우우바(Uuba), 우익중기(右翼中旗), 투시에투 칸(Tusiyetü qan) |
분야 | 정치/외교/외교사안 |
유형 | 집단·기구 |
집필자 | 체렝도르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투사토왕국(投謝土王國)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인조실록』 16년 6월 9일 |
청대의 호르친 6호쇼 중 하나.
개설
투사토왕국(投謝土王國)이란 호르친의 우익중기(右翼中旗)를 가리킨다. 이를 속어에서는 ‘투시에투 왕기’라 불렀는데, 이 때문에 이들을 투사토왕국이라 칭한 것으로 보인다.
호르친([科爾沁], Qorčin)은 몽골제국 이후 시기 몽골의 한 부족이다. 호르친이란 ‘활 통 및 화살 통을 휴대하고 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칭기즈칸은 1189년 친위대인 케식을 두었으며 그중 호르친을 동생인 하사르에게 예속시켰다. 1206년 칭기즈가 몽골을 통일시켜 대칸으로 추대되었을 때 하사르 휘하의 호르친은 더 확대되어 대칸을 호위하게 되었다. 몽골제국 이후 시기에 호르친은 하사르의 후예가 통치하는 부족의 명칭이 되었다. 그때 호르친은 모두 13개의 오톡([營], otoγ)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다시 좌·우익으로 양분되었다. 초기에는 훌룬부이르 이동 지역에 거주하였으며 15세기 초 아다이(Adai) 칸 때에 오이라트에게 밀려 남진하여 대흥안령을 넘어 눈강(嫩江) 유역에서 유목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렇게 이주한 호르친은 논 호르친(Non Qorčin)이라 불리게 되고 옛 땅에 남은 호르친은 아르 호르친(Aru Qorčin)이라 불리게 되었다.
당시 호르친은 (동)몽골의 6만호에도 소속되지 않는 특별한 행정단위였다. 200,000 이상의 속민을 가진 강력한 존재로 군림하며, 대칸의 권력을 보호하는 한편으로 대칸과 협력하여 몽골의 통일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17세기 초에 호르친은 또다시 남진하여 오늘날 내몽골 지림(Jirim) 아이막 지역에서 유목하면서 예전처럼 몽골 대칸의 통치를 받았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590년대 건주여진(후금)의 누르하치가 강력해지자 여진의 여러 세력이 그에게 대항하였는데 호르친도 그들과 연합하여 누르하치와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그러나 몽골의 대칸 릭단은 호르친의 이 항쟁을 지원하기는커녕 후금과 내통한다는 구실로 호르친을 토벌하였다. 이 사건을 후금이 이용하여 호르친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후금은 호르친에 대하여 군사 위협을 가하면서 한편으로는 회유 정책을 실시해 나갔다. 호르친은 다른 한편으로는 몽골의 릭단 칸과 할하로부터 지속적인 압박과 공격을 받고 있었다. 결국 1624년 호르친의 수령 우우바(Uuba)는 후금과 상호보호 맹약을 맺었다. 이 맹약은 표면상으로는 호르친과 후금의 ‘동등한’ 동맹이었으나 실제로는 호르친이 후금에 충성하고 남몽골 복속에 협조하는 종속 관계로 변하였다. 1625년 릭단 칸이 호르친을 침입할 때 후금의 군사적 원조를 받았고 그다음 해 우우바는 자기 부족을 데리고 후금에게 투항하였다. 이에 후금은 우우바에게 투시에투 칸(Tusiyetü qan)이라는 칭호를 수여하였다.
조직 및 역할
청나라에서 1636년 우우바의 아들 바다리(Badari)에게 자삭(jasaγ) 투시에투(Tüsiyetü) 친왕(親王)의 작위를 수여하여 호르친 우익중기를 통치하도록 하였다. 우익중기 외에도 호르친으로 하여금 5개의 호쇼를 편성하여 지림(Jirim) 맹(盟)에 예속시켰다. 맹은 몽골의 행정단위로 여러 개의 부족 연합을 말한다. 5개의 호쇼는 우익전기[자삭투 왕 호쇼], 우익후기, 좌익중기(左翼中旗), 좌익전기[빈투 왕 호쇼], 좌익후기이다.
변천
호르친 부 왕공들은 여러 몽골 부족 가운데 제일 먼저 항복한데다가 대대로 청나라 황족과 혼인하였기 때문에 다른 몽골귀족보다 지위가 가장 높았다.
1638년(인조 16) 조선에서 소를 사기 위하여 몽골 땅으로 성익(成釴)을 보냈는데 그가 가 본 곳 중 빈토왕국(賓土王國)이 나온다. 즉, 동쪽으로 가서 투사토왕국(投謝土王國)·소토을왕국(所土乙王國)·빈토왕국에 도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인조실록』 16년 6월 9일). 이때 나이만의 왕은 군촉이었다.
참고문헌
- Хөрвүүлсэн Ц. Цэрэндорж, Манжийн үнэн магад хууль, Бит пресс, 2009. (Ts. 체렝도르지 역주, 『만주실록(滿州實錄)』, 비트프레스, 2009.)
- Хөрвүүлсэн Ц. Цэрэндорж нар, Зарлигаар тогтоосон гадаад монгол, хотон аймгийн ван гүнгүүдийн илтгэл шастир, Согоо нуур, 2007. (Ts. 체렝도르지 등 역주, 『흠정외번몽골회부왕공표전(欽定外藩蒙古回部王公表傳)』, 소고오 누우르, 2007.)
- Ван Мандуга, Монголын түүхийн толь, ӨМАХХ, 1999. (왕 만두가 주편, 『몽골사 사전』, 내몽골인민출판사, 1999.)
- 이용범, 「成釴의 蒙古牛 貿入과 枝三·南草」, 『震檀學報』 28, 震檀學會,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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