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韓國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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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대한제국 정부가 근대적 발권 및 국고 취급을 위해 만든 중앙은행.

개설

대한제국 정부는 통감부의 요구에 의해 제일은행 업무에 대한 감독권자인 일본의 주무대신(외무대신과 대장대신), 즉 일본 정부의 승인에 따라 1909년(융희 3) 11월에 식민지 중앙은행으로 한국은행을 설립하였다. 한국은행은 제일은행의 경성, 부산 지점을 제외한 12개 지점을 인수받고 발권과 국고 취급 업무, 화폐정리사업 등 제일은행의 중앙은행 업무를 인계받아 영업을 시작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909년 7월 26일 일본 정부와 통감부 간 한국중앙은행 설립에 관한 협정이 이루어지고, 같은 날 한국은행조례가 발표되었다. 이후 8월 16일 일본은행 총재 마스오 시게요시[松尾臣善]를 설립위원장으로 탁지부 차관 아라이 겐타로[荒井賢太郞] 외 31명이 설립위원으로 임명되었다. 한국 측 위원은 한상룡(韓相龍)과 백완혁(白完爀) 2명이 임명되었다. 이들은 도쿄의 대장대신 관저에서 열린 설립위원회에 출석하였고, 8월 25일 정관이 인가되었다.

식민지 금융정책 마련 작업에 착수한 통감부는 사설은행인 제일은행이 중앙은행의 역할을 맡는 금융체제를 지양하고 자신들이 직접 감독통제권을 장악하는 별도의 중앙은행 체제를 일본 정부에게 요구하였다. 통감부의 주장은 전적으로 정부의 재정방침에 따라 국내 금융기관을 통일하고 금융조절의 중추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앙은행을 설립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것이었다.

제일은행은 1909년 한국은행 창립을 계기로 중앙은행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본래의 업무 영역으로 되돌아갔다. 영업을 시작한 한국은행과 각 지역의 농공은행 등 특수은행의 영업이 확대됨에 따라 이전까지 조선에서 은행업을 독점해오던 제일은행의 위상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웠다. 제일은행의 영업망이 2개 지점으로 대폭 축소되었고, 대한제국의 국채 인수, 일본인에 대한 대부, 농공채권 응모 등을 위해 경성출장소를 신설했던 일본흥업은행(日本興業銀行)도 한국은행 설립 이듬해인 1910년 2월 철수했다.

조직 및 역할

한국은행은 1909년 10월 14일 제1회 주금(株金) 불입을 종료한 후 제일은행 두취(頭取) 시부자와 에이이치[澁澤榮一]의 추천으로 총재에는 제일은행 한국 총지점 지배인으로 동행(同行) 취체역(取締役) 이치하라 모리히로[市原盛宏]가 취임하였고 이사는 대장성 추천 미즈코시[水越理庸]와 미시마 타로[三島太郞], 총재 추천 기무라[木村雄次] 3명이 임명되었다. 2명의 감사는 하마구치[濱口吉右衛門], 이토 초지로[伊藤長次郞]였다. 11월 20일에 현재의 주식회사 제일은행으로부터 한국에서 은행권 발행에 관한 사무 기타 일체의 업무를 계승하였고, 11월 24일부터 영업을 개시하였다. 불입자본금은 그 후 3회에 걸쳐 징수하였다.

그러나 신설된 한국은행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은 통감부에 주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제일은행 두취(頭取)가 추천한 총재, 총재를 보좌하는 이사 등 한국은행의 모든 경영진은 제일은행 출신이거나 일본대장성에서 추천한 인물로 임명되어 기존의 제일은행과 감독권자인 일본 정부 사이의 인적관계가 그대로 계승되었다.

다른 금융기관에 대한 대한제국 정부의 감독권을 사실상 통감부가 장악했던 것과는 달리 한국은행 업무의 감독권에 대한 통감부 장악에는 큰 한계가 따랐다. 결국 보통은행을 지점은행과 본점은행으로 구분했던 이전까지의 이원적 보통은행 감독 체제에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과 보통은행을 포함한 여타 모든 금융기관으로 구분된 이원적 감독 체제로 변화된 것이다.

당시 예금과 대출에서 점하는 은행별 비중의 추이를 보면, 보통은행 업무를 겸업하면서 신설된 한국은행(이후 조선은행)이 빠른 속도로 비중을 잠식했다. 은행감독 체제는 대상이 바뀌어 중앙은행인 한국은행과 보통은행을 포함한 여타의 모든 금융기관으로 구분된 이원적 감독 체제로 변화되었다. 즉 제일은행과 일본 정부의 인적 관계를 계승한 한국은행에 대한 통감부의 장악력은 다른 금융기관과 달리 크게 제한되었다.

변천

한국은행은 1911년 8월 이후 조선은행으로 개칭되었다. 이때 제정된 「조선은행법」도 총재 임명권자와 업무감독권자를 일본 정부로 규정했고, 조선총독의 권한은 업무인가권과 감사권으로 제한되었다. 이는 한국은행과 마찬가지로 조선은행과 조선은행권이 일제의 대륙침략정책 수행을 위한 도구로서 ‘일본권’ 범주 차원에서 운용된 것과 관련이 있다.

참고문헌

  • 『대한제국(大韓帝國) 관보(官報)』
  •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관보(官報)』
  • 韓翼敎 편, 『韓相龍君を語る』(제1권), 韓相龍氏還曆紀念會, 1941.
  • 정태헌, 「식민지화 전후 보통은행의 경영추이와 이원적 감독체제」, 『역사문제연구』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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