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국(通商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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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아문(外務衙門) 소속으로 통상(通商)과 항해(航海) 사무 등을 담당하던 관서.

개설

통상국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으로 설치된 외무아문 소속의 관서로 통상과 항해 사무를 담당하였다. 통상국이 설치될 때 교섭국·총무국·기록국·회계국도 함께 설치되었다. 이듬해 외부(外部) 관제가 개편되어 지원 성격의 부서인 총무국·기록국·회계국은 대신관방에 소속되었고 통상국과 교섭국 2국은 외부의 가장 기본적인 부서가 되었다. 통상국의 기본 업무, 부서의 규모, 제도 등은 대한제국 시기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외부가 철폐되면서 통상국도 함께 철폐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882년(고종 19) 각국과의 외교 조약 체결과 무역 통상, 자강 정책 추진을 위해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계승하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이 설치되었다. 갑신정변을 거치면서 자강 정책을 추진하는 기관들이 독립되고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은 통상과 교섭만을 전담하게 되었다. 지원 부서의 총무·번역·기록·회계 관련 업무가 있었지만,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은 통상사(通商司)와 교섭사(交涉司)가 중심이었다.

갑오개혁으로 중앙 관제의 전면적인 개편이 있었지만 유일하게 외무아문만은 통리군국사무아문의 조직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6사(司)를 6국(局)으로 바꾸었을 뿐 직무와 명칭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러한 구조는 이듬해 외부로 개편되어서도 마찬가지였으며 1905년 외부가 철폐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조직 및 역할

외무아문 통상국은 통상과 항해 사무를 맡아보았다. 참의(參議)가 1명, 주사(主事)가 2명 배치되었다. 외무아문은 이듬해 외부로 개편되었다. 교섭국이 1등국인 반면 통상국은 2등국이 되었다. 통상국은 제1과, 제2과의 두 과(課)로 나뉘었다. 제1과에서는 통상 항해에 관한 사항, 영사관 직무와 권한에 관한 사항, 통상 보고에 관한 사항을 맡았다. 제2과에서는 외국에 출업(出業)하는 자에 관한 사항, 해외 여권에 관한 사항, 외국에 사는 국민에 관한 사항 등을 맡았다. 특히 제2과의 해외 영사 업무 관련 조항은 일본을 중심으로 해외로 나가 거주하는 국민들이 많아지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었다.

통상국의 책임자인 통상국장은 대한제국기에 다른 국장에 비해 가장 오랜 기간 재임하였다. 외부가 존속했던 기간 동안 통상국장은 2명밖에 임명되지 않았고, 특히 정대유(丁大有)는 1897년(고종 34) 12월에 임명되어 외부가 철폐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러한 결과는 영사 업무를 수행하는 통상국의 전문성을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통상국의 가장 핵심적인 업무는 통상 항해 관련 사항이었다. 통상국은 각 개항장의 조계지(租界地)·수세(收稅)·계약 체결·외국 선박의 도착 등의 사안에 대해 해관(海關)이나 감리서(監理署)와 많은 문서를 주고받았다.

변천

1900년에 외부 관제의 정원 증액 조치가 있었지만 외부의 직무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외부가 철폐되면서 통상국도 함께 철폐되었다.

참고문헌

  • 『통상국일기(通商局日記)』
  • 전미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 관한 연구」, 『이대사원』24·25,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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