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안현(淸安縣)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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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청안현 |
한글표제 | 청안현 |
한자표제 | 淸安縣 |
상위어 | 충청도(忠凊道) |
동의어 | 청당(靑塘), 청연(淸淵), 도서(道西), 도서(都西), 도안(道安)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임용한 |
폐지 시기 | 1914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청안현(淸安縣)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고종실록』 16년 3월 25일 |
충청북도 청주시 일부와 괴산군 청안면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청안현(淸安縣)은 조선시대 충청도 청주목에 속한 현이다. 고려의 청연현(淸淵縣)과 도안현(道安縣)을 합쳐 설립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현감을 두었다. 15세기에 호수가 293호, 인구가 1,419명이었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90명, 진군(鎭軍) 50명, 선군(船軍) 48명이었다. 토지는 3,334결인데, 이 가운데 논이 2/7 정도를 차지하였다. 1914년에 괴산군에 병합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청안현은 삼국시대에는 청당현(淸塘縣) 또는 청연현이라고 하였다. 고려초에 청주의 속현으로 삼았다. 도안현은 고구려의 도서현(道西縣)으로,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 도서로 고쳐서 흑양군(黑壤郡)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초에 도안(道安)으로 고쳤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청주에 소속시켰다. 고려중기에 청연현에 감무를 설치하고 도안까지 겸하여 관장하게 하였다. 조선 1405년(태종 5)에 두 고을이 백성이 적고 땅이 좁다고 하여 합쳐서 청안현으로 만들었다. 1413년에 감무를 현감으로 고쳤다.
조직 및 역할
조선후기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수령은 종6품 현감이다.
변천
조선후기에도 현을 유지하였다. 작은 현으로 18세기에는 가호가 2,809호, 토지는 1,856결이었다. 『청안군양안(淸安郡量案)』에는 6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호수는 3,978호 토지는 2,030결이었다. 1879년(고종 16)에는 이 지역에서 대동미를 납부할 때 포구까지 실어 나르는 거리가 멀어 쓸데없는 비용이 추가로 들었기 때문에 무명으로 대신 납부하도록 하였다(『고종실록』 16년 3월 25일). 1895년(고종 32)에 현을 일괄적으로 군으로 고치면서 군으로 승격하였다. 1914년 지방행정구역 통폐합 때 서면을 청주에 주고, 나머지 지역은 괴산군에 병합되어 청안면이 되었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충청북도읍지(忠淸北道邑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