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현(延日縣)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연일현 |
한글표제 | 연일현 |
한자표제 | 延日縣 |
관련어 | 근오지현(斤烏支縣), 임정현(臨汀縣), 오천현(烏川縣), 오량우현(烏良友縣)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신라~조선 |
왕대 | 신라~조선 |
집필자 | 정요근 |
폐지 시기 | 1995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연일현(延日縣)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15년 2월 15일, 『세종실록』 17년 11월 24일, 『세조실록』 12년 7월 14일 |
현재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연일현(延日縣)은 영일현(迎日縣)이라고도 한다. 신라시대의 근오지현(斤烏支縣)에서 기원하며, 신라 경덕왕 때 임정현(臨汀縣)으로 개명하여 의창군(義昌郡: 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일원)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연일현이 되어 동경유수관(東京留守官) 경주(慶州)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1390년(고려 공양왕 2)에 처음으로 감무(監務)가 파견되었으며, 조선초기에는 해안 방어의 중요성 때문에 병마사(兵馬使) 혹은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가 지연일현사(知延日縣事) 혹은 판연일현사(判延日縣事)를 겸임하였다. 그러나 세조 연간부터 현감(縣監)으로 조정되어 19세기 말까지 이어졌다. 1895년(고종 32)에 연일군(延日郡)이 되었다가, 1914년에 영일군(迎日郡)으로 확대 개편되어 청하·흥해·장기 3군을 병합하였다. 조선시대 연일현은 현재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조선시대 모두 연일현과 영일현의 명칭을 함께 사용하였다. 연일현은 신라의 근오지현에서 기원하며, 신라 경덕왕 때 임정현으로 개명하여 신라 9주 중 양주(良州)에 속한 의창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에 들어와서 연일현이라 고쳤으며, 1018년(고려 현종 9)에 동경유수관 경주의 속현이 되었다. 1390년에 감무가 처음 파견되었고, 관군만호(管軍萬戶)가 겸임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도 연일현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1417년(태종 17)에 연일에는 진(鎭)이 설치된 까닭에 병마사가 판연일현사를 겸임하였으며, 1423년(세종 5)에는 병마사를 병마첨절제사로 개칭하였다. 그런데 실제 세종 연간에는 판연일현사가 아니라 지연일현사의 기록이 확인된다(『세종실록』 15년 2월 15일) (『세종실록』 17년 11월 24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판현사(判縣事)를 지현사(知縣事)로 표기하였다.
조직 및 역할
연일현은 신라 경덕왕 때 임정현으로 불렸으며, 의창군의 영현으로 편성되었다. 임정현에는 지방관으로 소수(少守) 혹은 현령(縣令)이 파견되었다. 고려시대에 연일현은 동경유수관 경주의 속현으로 편성되었기 때문에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다. 그 대신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읍사에서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연일현에는 1390년부터 지방관인 감무가 파견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었다. 조선초기에 연일의 지방관은 현감이 아니라 병마사가 지연일현사를 겸임하는 형태였다. 동해안에 위치한 까닭에 왜구 침입에 대한 방비를 하고자 현감보다 높은 지위의 무관(武官)을 지현사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세조 연간부터 연일현감으로 조정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연일현에는 종6품의 현감과 종9품의 훈도(訓導)가 파견되었다. 18세기의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연일에는 6품의 문관(文官) 혹은 무관(武官)이 현감으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軍官) 30명, 인리(人吏) 20명, 지인(知印) 7명, 사령(使令) 15명, 관노(官奴) 7명, 관비(官婢) 7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종6품의 현감이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변천
연일의 지현사 혹은 판현사는 세종 연간 이후 현감으로 개칭되었다. 1466년(세조 12)에 연일현감에 대한 기록이 확인되므로(『세조실록』 12년 7월 14일) 그 이전에 현감으로 변경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세조 연간에 현감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조선시대 내내 연일과 관련해 연혁에서 특별한 변동 내용은 없다. 1895년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연일군으로 변동되어 동래부(東萊府)의 관할에 속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연일군은 경상북도 관할의 4등군으로 편제되었다. 1914년에 일제가 지방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연일·흥해·장기·청하 4개 군이 영일군으로 통폐합되었다. 현재 영일이라는 공식 행정 지명은 사라졌고, 포항시 남구에 연일읍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연일현의 관아는 여러 차례 이동하였다. 원래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 남성리에 관아와 읍성이 있었으나, 1747년(영조 23)에 남구 장흥동으로 관아가 이전하였다. 연일현 관아는 다시 1806년(순조 6)에 남구 연일읍 생지리로 이전하였다가 1871년(고종 8)에 남구 대잠동으로 이전하였고, 1886년(고종 23)에 생지리 읍치로 다시 이전하였다. 생지리 일대는 현재 연일읍 중심부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