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군(泰安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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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태안군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태안군(泰安郡)은 조선시대 충청도 홍주목에 속한 군(郡)이다. 고려말에 지태안군사로 승격하였다. 15세기에 호수는 173호였으며, 군정은 진군(鎭軍) 22명, 선군(船軍) 13명이었다. 토지는 2,985결인데, 이 가운데 논이 2/7 정도를 차지하였다. 1914년에 서산군에 병합되었다가, 1989년에 다시 군으로 독립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태안군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성대혜현(省大兮縣)이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소태현(蘇泰縣)으로 고쳐서 부성군(富城郡)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 1018년(고려 현종 9)에 지금의 홍성 지역인 운주(運州)의 임내로 삼았다. 1298년(고려 충렬왕 24)에 원나라 황실의 환관이 된 이대순(李大順)의 고향이라고 하여 지태안군사로 승격하였다. 조선에서도 그대로 군으로 삼았다.

태안은 200호가 되지 않는 작은 지역이지만 군의 지위를 유지하였는데, 조선전기에 목장·강무소·어량으로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태안에는 어량이 46개, 염전이 11개나 있었다. 해산물의 종류도 충청도에서 제일 많았다. 조선시대에는 월경지(越境地)를 많이 폐지했지만 태안은 충청도 제일의 해산물의 산지여서 각지의 월경처가 다수 존재하였다. 태안 서쪽에 있는 안흥량(安興梁)은 수군과 조운의 요지인데, 난파선이 많이 발생해서 여러 번 운하를 파려는 시도를 했다. 1416년(태종 16)에 태안·횡천·평강에 강무장을 설치하고 강무소를 두었는데(『태종실록』 16년 5월 20일), 태안은 토지가 비옥해서 농사를 짓지 않고 버려두기가 아깝다고 하여 바로 폐지하였다(『태종실록』 16년 6월 26일).

조직 및 역할

수령은 종4품 군수이다. 중요한 해안 지역으로 문관과 무관을 교차로 수령으로 임명하였다. 좌수 1명, 별감 2명, 군관 40명, 아전 50명, 지인 18명, 사령 24명, 관노 15명, 관비 15명이 속해 있었다. 수군 기지로 안흥진이 있었으며, 종3품 첨사와 거북선 1척과 다수의 전함이 주둔하였다.

변천

조선후기에는 9개 면이 있었다. 1759년(영조 35)의 기묘장적(己卯帳籍)에 의하면 호수는 4,373호, 인구는 남자가 7,679명, 여자가 7,195명이었다. 토지는 밭 1,310결, 논 1,405결이었다. 1914년에 서산군에 병합되어 태안면이 되었다. 1989년에 다시 태안군으로 복구되었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대동지지(大東地志)』
  • 『만기요람(萬機要覽)』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태안읍지(泰安邑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