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부(蔚山府)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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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울산부 |
한글표제 | 울산부 |
한자표제 | 蔚山府 |
관련어 | 굴아화(屈阿火), 하곡(河曲), 울주(蔚州), 학성(鶴城), 개지변(皆知邊), 화성(火城), 공화(恭化), 흥려(興麗), 흥례(興禮)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고려~조선 |
왕대 | 고려~조선 |
집필자 | 정요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울산부(蔚山府)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조실록』 12년 1월 15일 |
현재 울산광역시 중구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울산부(蔚山府)는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울주(蔚州)에서 기원한다. 울주는 신라의 하곡현(河曲縣)과 우풍현(虞風縣), 동진현(東津縣)을 통합한 고을이다. 울주는 고려초기에는 흥례부(興禮府) 혹은 흥려부(興麗府)라고도 불렸다. 고려시대에 울주에는 방어사(防禦使)가 설치되었으며, 이후에는 지주사(知州事)가 임명되었다. 조선 건국 후에는 울주가 울산군(蔚山郡)으로 개칭되었고, 군수(郡守)가 파견되었다. 1599년(선조 32)에 울산부로 승격하였으며, 1895년(고종 32)에 울산군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 울산부는 현재 울산광역시 중구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울산부는 고려초기에 신라시대의 하곡현에 우풍현과 동진현을 합병시켜 설치한 울주에서 기원한다. 원래 흥례부 혹은 흥려부를 두었다가 공화현(恭化縣)으로 강등되었으나, 다시 울주로 승격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울주에 방어사를 두었으며, 이후 지울주사로 개칭되었다. 조선 건국 후인 1397년(태조 6)에 병마사(兵馬使)가 지울주사를 겸하도록 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울주를 울산군으로 개명하였고, 1415년(태종 15)에 경상좌도 병마도절제사영에 울산군의 읍치를 두었다가, 1427년(세종 9)에 병마도절제사영을 없애고 읍치를 서쪽 7리 지점으로 이전하였다. 1437년(세종 19)에 병영을 복구하고 울산군을 울산도호부로 승격시켰으나, 그해에 바로 울산군으로 낮추었다. 1466년(세조 12)에 지울산군사를 울산군수로 개칭하였으며(『세조실록』 12년 1월 15일), 이후 1599년에 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조직 및 역할
울산부는 신라 경덕왕 때의 하곡현에서 기원하는데, 우풍현과 동진현을 합병하였다. 하곡현과 동진현은 임관군(臨關郡: 현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일대)의 영현(領縣)이었으며, 우풍현은 동안군의 영현이었다. 하곡현과 동진현·우풍현·동안군 등의 읍치는 현재 울산광역시 영역 내에 있었을 것이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당시 하곡·동진·우풍 3현에는 지방관으로 소수(少守) 혹은 현령(縣令)이 임명되었다. 고려시대에 울주는 동래현(東萊縣)과 헌양현(巘陽縣: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일대) 두 곳의 속현(屬縣)을 거느렸으며, 방어사·지주사 등의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고려시대에 울주에는 지방관이 근무하는 외관청(外官廳)과 별도로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울주는 울산으로 개명되고 울산에는 군수가 파견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와 달리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울산군수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1599년(선조 32)에 울산군이 울산도호부로 승격한 이후에는 군수 대신 도호부사가 파견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울산군에는 종4품의 군수와 종9품의 훈도(訓導)가 파견되었다. 그런데 울산이 도호부로 승격한 이후에 편찬된 지리서인 『울산부읍지(蔚山府邑誌)』에 의하면 울산군에는 4품의 문관(文官) 혹은 음관(蔭官)이 도호부사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軍官) 25명, 인리(人吏) 73명, 지인(知印) 33명, 사령(使令) 29명, 관노(官奴) 34명, 관비(官婢) 14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울산에는 종3품의 도호부사가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의 내용에 따르면 울산은 10개의 면과 244개의 리로 구성되었으며, 호수는 8,587호, 인구는 총 32,382명으로, 남자 11,419명, 여자 20,963명이었다. 조선시대에 울산부의 관아와 읍치는 현재 울산광역시 중구 북정동 일대에 위치하였다.
변천
1599년에 도호부로 승격될 때 이웃한 언양현(彦陽縣)이 울산에 합병되었다가, 1612년(광해군 4)에 언양현이 다시 분리되었다. 1895년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울산군이 되어 동래부(東萊府)의 관할에 속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울산군은 경상남도 관할의 3등군으로 편제되었다. 울산군은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울산부읍지(蔚山府邑誌)』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호구총수(戶口總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