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목(海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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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남쪽 해안 지역에 있으며 동북쪽으로 평산·재령, 북쪽으로 신천, 서쪽으로 문화·송화와 접경하는 곳에 설치되어 주민들을 관할하고 황해도 행정·군사의 거점 역할을 하였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해주목(海州牧)은 황해도 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해방(海防)의 거점이며 조선초부터 황해도의 계수관(界首官)이었다. 수령은 목사였으며, 감영이 있을 때에는 감사와 목사가 함께 있었다. 목사를 따로 두지 않고 관찰사가 수령을 겸할 때에는 판관을 별도로 두었으며, 도내의 군사들을 거느리는 황해병사의 군영이 읍내에 있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삼국시대에 처음에는 백제 땅이었으며 고구려가 병합하여 내미홀군(內米忽郡)을 세웠다. 통일신라시대 748년(신라 경덕왕 7)에 폭지군(瀑池郡)으로 바뀌었고, 905년(신라 효공왕 9)부터 해주로 명칭이 바뀌었다. 고려시대 983년(고려 성종 2)에 목으로 승격되어 부사가 보임되었고, 995년(고려 성종 15)에 절도사가 파견되었다. 1012년(고려 현종 3)에 절도사가 폐지되었으며, 1018년(고려 현종 9)에는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로 개편되었다. 1122년(고려 예종 17)에 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서해안 방위의 중심 거점이었으므로 군진으로서의 성격이 계속 강조된 것이다. 1247년(고려 고종 34)에 해주목으로 바뀌었으며 목사가 부임하였다. 서해도안찰사(西海道按察使)가 주재하는 영의 소재지였으며, 1389년(고려 창왕 1) 이후 관찰사영의 소재지가 되어 서해도의 군사·행정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조선 건국 후 1393년(태조 2)에 황주(黃州)와 함께 서해도의 계수관으로 정해졌다(『태조실록』 2년 11월 12일).

조직 및 역할

감영이 설치되기 전에는 종2품 목사가 보임되었다. 군병은 시위군 63명, 영진군 390명, 선군 450명이 있었다. 목사를 두지 않고 관찰사가 수령을 겸할 때에는 음관 5품관이 판관으로 보임되었으며 좌수 1명, 별감 3명, 군관 150명, 아전 50명, 지인 20명, 나장 15명, 군뢰 30명, 관노 26명, 관비 30명이 있었다. 남동쪽의 용매도에는 수군만호진이 있었으며, 병선 6척이 배치되었다. 용매진은 1704년(숙종 30)에 첨사진으로 격상되었고, 전선 7척이 배치되었다(『숙종실록』 30년 12월 28일).

변천

1449년(세종 31)에 황해도의 병영을 해주에 두었으며, 관찰사영을 황주로 옮겼다. 1593년(선조 26)에 병영은 해주에, 감영은 연안에 두도록 하였다(『선조실록』 26년 7월 29일). 1601년(선조 34)에 관찰사영이 다시 해주에 설치되어 감영과 병영, 목사의 관아가 읍성 안에 함께 있게 되었다. 1616년(광해군 8)에 역옥사건이 발생하여 읍호가 벽성(碧城)으로 바뀌고 현으로 강등되었으나(『광해군일기(중초본)』 8년 10월 27일), 억울한 옥사임이 밝혀져 1623년(인조 1)에 다시 읍호와 읍격을 회복하였다. 1707년(숙종 33)에 감사가 수령을 겸하도록 하고 목사를 폐지하였으며, 판관을 두어 읍의 행정을 담당하게 하였다. 1759년(영조 35)에 목사를 복구하였으나, 1767년(영조 43)에 다시 목사를 폐하고 판관을 두어 관찰사 부재 시 행정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해주군으로 편제되었고 해주부의 중심 읍으로 연안·배천·옹진·강령·장연·송화·풍천·안악·장연·은율·재령·신천·문화·서흥·봉산의 기존 황해도에 속하는 읍 가운데 서남쪽에 위치한 15읍을 총괄하였다. 1896년(고종 33)에 전국에 13도제가 실시되자 다시 황해도에 속하였으며 도청 소재지가 있는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황해도(黃海道) 해주목(海州牧)
  • 『여지도서(輿地圖書)』황해도(黃海道) 해주(海州)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강석화, 「조선후기 황해도 연안 방위체계」, 『한국문화』3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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