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신역(永申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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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도 진원현(珍原縣)에 위치했다가, 진원이 장성에 병합된 후에는 장성에 위치했던 역.

개설

조선시대 영신역(永申驛)은 원래 전라도 진원에 있었으나, 1600년(선조 33) 진원이 장성(長城)에 병합된 후에는 장성에 속하게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영신역은 진원 서쪽 10리(약 4㎞) 지점에 위치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승나주도(昇羅州道)의 소속 역(驛)으로 편제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청엄도(靑嚴道) 혹은 청암도(靑巖道)의 소속 역으로 편제되었다.

내용 및 변천

영신역은 고려시대에도 진원에 위치했으며, 22역도 중 승나주도의 소속 역으로 편제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영신역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청엄도 소속의 역으로 기록되어 있다(『세종실록』 지리지 전라도). 1462년(세조 8) 전국적인 역도제(驛道制)의 개편 때에도 영신역은 청엄도 소속으로 편성되었으며(『세조실록』 8년 8월 5일), 『경국대전(經國大典)』과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청암도 소속으로 기록돼 있다. 즉 영신역은 조선초기부터 조선후기까지 청암도(청엄도)의 소속 역으로 별다른 변화 없이 유지되었던 것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영신역에는 역리(驛吏) 62명, 역노(驛奴) 48명, 역비(驛婢) 17명, 역마(驛馬) 14마리가 배속되어 있었다.

영신역은 북쪽으로는 장성·정읍 방면, 남쪽으로는 광주·나주 방면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상에 위치하였다. 영신역에서 북쪽으로는 장성 단엄역(丹嚴驛), 남쪽으로는 광주 선암역(仙巖驛) 및 광주 경양역(景陽驛) 등과 연결되었다.

1896년(고종 33) 1월에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전국의 역들이 폐지되면서 영신역도 폐지되었다.

영신역의 위치는 현재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 율곡리에 해당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정요근, 「高麗·朝鮮初의 驛路網과 驛制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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