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야다(巴野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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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금(청)의 정예군이자, 청대 호군의 전신인 바야라[bayara, 擺牙喇].

개설

후금(청)의 정예군이자, 청대 호군의 전신인 바야라([擺牙喇], bayara)를 뜻하는 한자어이다. 바야라는 본래 만주와 몽골 팔기(八旗)에서 선발된 정예병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호군(護軍)으로 개칭되었고, 호군영(護軍營)에 소속되어 호군통령(護軍統領)의 지휘를 받았다. 이들은 황제에 직속된 금위군(禁衛軍)이었고, 그 밖에 각 기에 소속된 정예병으로 전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바야라는 평소 궁성의 숙위, 황제 순행 시의 호종 등 친군영(親軍營)으로 기능하였다. 바야라의 구성원들은 모두 팔기 만주와 몽골의 정예병으로 선발되었고, 매 기마다 정2품의 통령 1명씩을 두어 관련 사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상삼기(上三旗)는 주로 궁궐을 지켰고, 하오기(下五旗)는 여러 왕과 버일러 등을 지켰다. 그 밖에 각지에 주둔하거나 전장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었다.

조직 및 역할

후금은 각 부대에서 정예병을 선발하여 바야라로 삼았다. 바야라는 호군영(護軍營)이라는 친군영으로 조직되었는데, 정2품의 호군(護軍) 통령(統領)과 정3품의 호군 참령(參領)을 두어 지휘하게 하였다. 호군 통령과 참령 아래에는 호군교(護軍校)라는 장교 집단이 있었으며, 그들이 호군을 통제하였다. 바야라는 황제의 호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각 기의 정예병 조직으로서 전쟁에서 활약하기도 하였다.

변천

바야라의 군사 조직인 호군영은 본래 바야라이 쿠와란([護軍營], bayara i kūwaran)이라 하였고, 1634년 바야라이 투([巴牙喇纛], bayara i tu)로 고쳐 불렀으며 1660년을 전후하여 호군(護軍)이라는 한자식 명칭을 쓰면서 호군영으로 개칭되었다.

호군영의 지휘관인 호군 통령과 참령은 본래 바야라이 투이 어전([巴牙喇纛額眞], bayara i tu i ejen)과 바야라이 잘란이 어전([巴牙喇甲喇額眞], bayara i jalan i ejen)이라 하였다. 1634년에 어전을 장긴으로 고쳐 각각 바야라이 투이 장긴([ 巴牙喇纛章京], bayara i tu i janggin), 바야라이 잘란이 장긴([巴牙喇甲喇章京], bayara i jalan i janggin)이라 불렀다. 1660년 바야라영을 호군영으로 개편하면서 각각 호군 통령·호군 참령으로 개칭하였다.

1660년에 호군이라는 한자식의 표현을 사용하였지만, 계속해서 바야라라는 발음으로 그들을 지칭하였다. 1670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신경윤(愼景尹)의 보고에 따르면 여전이 이들을 호군이 아닌 ‘파야다(巴野多)’로 지칭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청에서 귀로 전해들은 발음이 ‘바야라’였음을 의미한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바야라는 엄선된 정예병으로서 각 기에 1,000명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현종개수실록』 11년 윤2월 8일). 그러나 바야라의 규모는 시대마다 달라졌고, 임무도 이에 따라 세분화되었으므로 특정하기는 어렵다.

참고문헌

  • 『만문노당(滿文老檔)』
  • 『청사고(淸史稿)』
  • 『대청회전(大淸會典)』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만주학센터, 『만주실록 역주』, 소명출판, 2014.
  • 마크 엘리엇, 이훈·김선민 역, 『만주족의 청제국』, 푸른역사, 2009.
  • 유소맹, 이훈·이선애·김선민 역, 『여진 부락에서 만주 국가로』, 푸른역사, 2013.
  • 杉山淸彦, 『大淸帝國の形成よ八旗制』, 名古屋大學出版會,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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