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현(橫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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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횡성 지방을 다스리던 관아. 조선시대 횡성 지방을 다스리던 관청 및 행정기구.

개설

고려시대에 읍호는 횡천현(橫川縣)이었으며, 속현(屬縣)으로 존속하다가 공양왕 때 감무(監務)가 파견되어 주현(主縣)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횡성현(橫城縣)으로 개명되었고, 23부제 편제에서 횡성군이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구려에서는 횡천현 또는 어사매(於斯買)라고 하였다. 신라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황천현(潢川縣)으로 개칭하여 삭주도독부(朔州都督府)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940년(고려 태조 23)에 횡천현(橫川縣)으로 개칭되었고, 995년(고려 성종 14)에 10도제에서 삭방도(朔方道)에 귀속되었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원주의 속현이 되었고, 1389년(고려 공양왕 1)에 감무를 설치하여 주현이 되었다. 1178년(고려 명종 8)에 동주도(東州道), 1263년(고려 원종 4)에 교주도(交州道), 1388년(고려 우왕 14)에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에 편제되었다.

조선초기의 군현제 개편에 따라 1413년(태종 13)에 현감(縣監)을 배치하였고, 1416년(태종 16)에 횡천과 홍천(洪川) 두 지역의 발음이 비슷하다고 하여 횡천을 횡성(橫城)으로 개명하였다(『태종실록』 16년 8월 10일). 횡성의 별호는 화전(花田)이었다. 1455년(세조 1)에 군익도(軍翼道) 체제에 따라 횡성현은 원주도(原州道)에 편제되었다. 원주도(原州道: 한자 중복 삭제)를 설치하고, 중익(中翼)을 원주와 횡성에 두었다(『세조실록』 1년 9월 11일). 1457년(세조 3)에 군익도 즉 3익(三翼) 체제를 폐지하고 거진(巨鎭)을 설치하는 진관(鎭管) 체제에서 횡성현은 원주진에 귀속되었다(『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조직 및 역할

조선초기에 현감과 훈도(訓導) 각 1인을 배치하였다. 현감은 3품 무직(武職)이었다. 수령의 자문기구인 향청(鄕廳)에 좌수(座首) 1인, 별감(別監) 2인을 두었다. 6방(六房) 관속으로 군관(軍官) 6인, 아전(衙前) 24인, 지인(知印) 14인을 두었다. 그리고 사령(使令) 23명, 관노(官奴) 21명, 관비(官婢) 12명을 두었다. 6방 관속은 객사(客舍), 아사(衙舍), 향청, 무학당(武學堂), 훈련청(訓練廳), 작청(作廳), 군기청(軍器廳) 등에 배속되어 근무하였다.

변천

1895년(고종 32) 8도제를 폐지하고 23부제를 시행하면서 강원도는 춘천부와 강릉부로 나뉘었다. 이때 횡성군이 되어 춘천부로 편제되었다. 이듬해인 1896년(고종 33)에 23부제를 폐지하고 13도제를 시행하면서 강원도가 복구되었고, 이때 횡성군은 강원도에 귀속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관동읍지(關東邑誌)』
  • 『관동지(關東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강원도, 『강원도사』11, 강원도사 편찬위원회, 2015.
  • 강원도·횡성군, 『횡성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강원향토문화연구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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