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현(英陽縣)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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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영양현 |
한글표제 | 영양현 |
한자표제 | 英陽縣 |
관련어 | 고은(古隱), 연양(延陽), 익양(益陽)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정요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영양현(英陽縣)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숙종실록』 1년 9월 23일, 『숙종실록』 3년 4월 9일, 『숙종실록』 7년 7월 17일, 『숙종실록』 8년 1월 15일 |
현재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영양현(英陽縣)은 원래 고은현(古隱縣)이었다고 하나 본격적인 연혁이 확인되는 것은 고려시대 영양군에서부터이다. 고려시대에는 예주(禮州: 후대의 영해부로 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의 소속이었다. 1175년(고려 명종 5)에 감무(監務)가 처음 파견되었지만 이후 폐지되고 영해부(寧海府)의 관할하에 들어갔다. 조선시대에도 오랫동안 영해부의 관할하에 있었다. 1675년(숙종 1)에 영해부로부터 분리되어 영양현이 설치되었으나, 1677년(숙종 3)에 폐지되었고, 1683년(숙종 9)에 다시 설치되어 현감(縣監)이 파견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영양군이 되었으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 영양현은 현재의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영양현은 고려시대의 영양군에서 기원한다. 본래 고은현이었다가 영양군으로 개칭하였으며, 1018년(고려 현종 9)에 예주에 소속되었다. 1175년에 감무가 처음으로 파견되었지만, 후에 다시 영해부에 소속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영양 지역은 영해의 관할 영역에 포함되었다. 그러다가 1675년에 지역 주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영양현이 영해부로부터 분리, 설치되었다(『숙종실록』 1년 9월 23일). 하지만 1677년에 영양현을 폐지하고 다시 영해부에 소속시켰다(『숙종실록』 3년 4월 9일). 1678년(숙종 4)에 영양의 관할하에 있었던 일부 지역이 진보현(眞寶縣)에 이속되었으나, 1683년에 영양현을 다시 설치하고 현감을 두었다(『숙종실록』 7년 7월 17일) (『숙종실록』 8년 1월 15일).
조직 및 역할
영양현은 고려시대에 영양군으로 예주의 관할하에 있다가 1175년에 감무가 파견되었다. 그러나 이후 다시 영해부에 소속되어 영해부의 관할하에 있었다. 조선전기에 편찬된 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모두 영양현이 영해부의 속현(屬縣)으로 기재되었다. 1683년에 영양현이 완전히 분리, 독립된 후에는 현감이 파견되었다. 18세기에 편찬된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영양현에는 6품의 음관(蔭官)이 현감으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軍官) 30명, 인리(人吏) 52명, 지인(知印) 21명, 사령(使令) 23명, 관노(官奴) 12명, 관비(官婢) 14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영양에는 종6품의 현감이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조선시대 영양현의 관아는 현재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지역에 위치하였다.
변천
1683년에 영양현이 영해부로부터 분리된 후 한동안 영양현과 관련하여 연혁에서 별다른 변동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1895년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영양군이 되어 안동부(安東府)의 관할에 속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영양군은 경상북도 관할의 4등군으로 편제되었다. 1914년에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에도 영양군은 그대로 유지되었으며, 현재까지 영양군으로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