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론(坡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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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숙종 후반에서 영조 초기에 박세채를 추종하는 인물들로 구성되었던 노론 내 분파의 하나.

개설

조선후기 노론 세력 내에서 분화된 분파의 하나로, 박세채(朴世采)를 추종하는 문인이나 족손(族孫)들로 구성되었다. 파론은 박세채가 파주(坡州)에 거주한 데서 연유한 명칭이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숙종 초에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화되었다. 이후 노론 내에서 사상적인 논쟁인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 즉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과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 간의 논쟁으로 인해 낙론(洛論)과 호론(湖論)으로 분리되었기에 이를 호락논쟁(湖洛論爭)이라고도 한다. 낙론 내에서는 숙종대 후반 몇몇 분파가 형성되었는데, 파론을 위시하여 낙당(駱黨)화당(花黨) 등으로 나뉘어졌다. 이 중 파론은 주로 박세채 문인들로 구성되었는데, 박세채가 파주에 거주했기 때문에 파론이라 하였다.

박세채 문인들이 결속하기 시작한 시점은 숙종대 후반인 1718년(숙종 44)을 전후한 시기로 보인다. 이 시기에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의 문인을 포함한 노론 내 일부 세력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송시열·송준길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추진하자, 박세채의 문인들도 스승의 문묘종사를 추진하였다[『숙종실록』 44년 5월 12일]. 그러나 사론(士論)이 이를 거부하자 여기에 불만을 품은 세력들이 파론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사론이란 송시열과 송준길을 추종하는 세력들의 논의였다.

조직 및 역할

파론에는 조태채와 그의 아들인 조관빈(趙觀彬), 김유(金楺)와 그의 아들인 김취로(金取魯), 박사익(朴師益)과 그 동생 박사성(朴師聖), 신방(申昉), 조언신(趙彦臣), 임징하(任徵夏) 등이 포함되었다[『영조실록』 1년 6월 1일]. 이들의 면면을 보면 박세채의 문인들과 친족, 외손 등이었다.

변천

파론의 구성 인물들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낙당의 영수로 일컬어지는 조태채와 그의 아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낙당의 영수인 조태채가 파론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은, 파론과 낙당이 연합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후일 파론은 낙당과 함께 연대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이근호, 「영조대 탕평파의 국정 운영론 연구」, 국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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