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부(靑松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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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청송부(靑松府) 즉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는 청부현(靑鳧縣)과 송생현(松生縣)이 통합되어 형성된 고을이다. 청부현은 삼국시대의 청기현(靑己縣)에서 기원하며, 신라 경덕왕 때는 적선현(積善縣)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부터 청부현이라 하였다. 송생현은 신라시대의 연혁은 분명하지 않으며 고려시대부터 기록이 확인된다. 고려시대의 청부현과 송생현은 모두 예주(禮州: 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의 속현(屬縣)이었다. 그중 송생현은 1143년(고려 인종 21)부터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조선시대 1394년(태조 3)에 청부현은 보성부(甫城府) 즉 진보현(眞寶縣)에 이속되었으나, 1418년(세종 즉위)에 세종이 즉위하자 진보현을 청부현에 소속시켜 청보군(靑寶郡)으로 승격하였다. 1423년(세종 5)에 진보현을 분리시키고 청부현과 송생현을 통합하여 청송군을 설치하였고, 1459년(세조 5)에 청송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청송군이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시대 청송도호부의 중심지는 현재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일대에 있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청송부는 청부현과 송생현 두 고을의 통합으로 생겨났다. 청부현은 삼국시대 청기현에서 기원하며, 신라 경덕왕 때 적선현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부이현(鳧伊縣), 운봉현(雲鳳縣) 등으로 불리다가 986년(고려 성종 5)에 청부현이 되었다. 송생현은 신라시대 때의 연혁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고려 때부터 송생현으로 불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청부현은 1394년에 진보감무의 관할 하에 들어갔다가, 세종이 즉위한 1418년에 청부현이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본향인 까닭에 진보를 소속시켜 청보군이 되었다. 그러나 1423년에 진보를 청부에서 분리시키고 청부와 송생을 통합하여 청송군을 만들었다(『세종실록』 5년 10월 27일). 1459년(세조 5)에 청송군을 청송도호부로 승격시켰다(『세조실록』 5년 6월 14일).

조직 및 역할

청송부의 전신은 청부현과 송생현이다. 신라시대의 청부현은 적선현으로 9주 중 명주(溟州) 야성군(野城郡: 현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일대)의 영현(領縣)으로 편제되었으며, 당시 적선현에는 소수(少守) 혹은 현령(縣令)이 파견되었다. 송생현은 신라시대의 연혁을 명확히 알 수 없다. 고려시대에 청부현과 송생현은 모두 예주의 속현으로 편제되었다. 송생현과 청부현의 내속 시기는 1018년(고려 현종 9)으로 추정된다. 두 고을에는 중앙에서 별도의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았으며, 예주에 파견된 지방관이 두 고을을 관할하였다. 대신 두 고을에는 별도로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읍사에서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한편 송생현에는 1143년부터 지방관인 감무가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반면 고려말기까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청부현은 조선 건국 직후인 1394년에 새로이 감무가 파견된 진보현으로 이속되었다. 1418년에 청부현이 진보현을 소속시켜 청보군이 되고 청보군수가 파견되었다가, 1423년에 청송군으로 변경되었다. 1459년에 청송도호부로 승격한 이후에는 청송도호부사(靑松都護府使)가 파견되었다.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에는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청송도호부사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종3품의 도호부사와 종6품의 교수(敎授)가 파견되었다. 18세기에 편찬된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종3품의 문관(文官)이 도호부사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3명, 군관(軍官) 25명, 인리(人吏) 30명, 지인(知印) 12명, 사령(使令) 15명, 관노(官奴) 58명, 관비(官婢) 43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종3품의 도호부사가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시대 청부현과 조선시대 청송도호부의 중심지는 현재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일대에 있었으며, 고려시대 송생현의 중심지는 현재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송생리 일대에 있었다.

변천

1459년에 청송도호부로 승격한 이후 오랫동안 연혁에 별다른 변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1895년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청송군으로 변동되어 안동부(安東府)의 관할에 속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청송군은 경상북도 관할의 4등군으로 편제되었다. 청송군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