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점(銀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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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은을 채취하여 제련하던 은광.

개설

조선시대 은을 채취하여 제련하던 은광을 은점이라고 한다. 조선초기 은의 수요는 주로 명나라의 세공(歲貢)으로 인하여 발생했다. 그러나 은에 대한 부담이 커지자 세종대에는 세공품을 금은에서 우마(牛馬)로 변경하였다. 이후 은점 개발은 적극 억제되었고 조정의 통제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은점 개발은 조정의 개입과 더불어 민간에서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7세기 조정은 호조의 주관 아래 별장을 파견하여 세금 징수를 전담하고, 18세기 이후가 되면 은점 개발은 조정보다는 민간에서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은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증가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초기 명나라에서 금은 세공을 강요하자 조선 조정은 이를 마련하기 위해 단천 등지에서 채굴을 장려하였다. 한편 은의 민간 사용은 적극적으로 억제하였으며, 은점에 대한 조정의 통제는 강화해나갔다. 그러나 1429년(세종 11) 금은의 세공을 다른 토산물로 바꿀 것을 명 조정에 요구하여 우마(牛馬)로 대신하게 되자 더 이상 은점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명의 요구를 막기 위하여 국내 은의 채굴을 금지하였다. 동시에 은점에 대한 규제도 마련되어 중앙의 각 아문과 군문, 지방의 감영을 막론하고 조정의 허락 없이 은점을 새로 설치하지 말도록 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몰래 은을 채굴하는 것이 성행하여 단천 은점 같은 곳에서 대량의 은이 산출되었다.

조직 및 역할

별장제(別將制) 아래에서 은점의 경영 형태를 보면 우선 은의 채굴권은 호조에 있었다. 허가가 이루어지면 호조에서는 별장을 파견하여 은광을 확인하고 은점 설치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전담하였다. 그러나 별장은 은점의 명목상 관리자일 뿐 실제 운영은 은점의 점장(店匠)들이 담당했다. 또한 실무 책임자격인 두목(頭目)이 따로 정해져 있어서 점역(店役)을 총괄하였다. 특히 두목은 은점의 채굴 제련 작업을 지휘감독하고 은을 분배하는 일을 전담하였다.

물주제(物主制) 아래에서 은점의 개발을 주도한 것은 혈주(穴主)와 덕대(德大)였다. 이들은 개발뿐 만 아니라 경영을 주도했다. 혈주는 18세기 말부터, 덕대는 19세기 초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만 별장제 아래 두목과의 차이점은 두목이 관청의 경비로 설점한 광산의 경영주였다면 혈주는 물주의 자금으로 설점한 광산의 경영주였다는 점이다. 혈주와 덕대는 물주의 자금으로 설점하고 채굴을 진행할 광군(鑛軍)을 모집하여 광산을 채굴하고 제련했다.

변천

조선시대 은점은 시기마다 달리 운영되었다. 15세기는 조정이 현지의 은점에 채방사(採訪使)를 파견하여 농민들을 징발하여 역을 부과한 부역제 아래서 국영 은점을 강행한 시기로 농민의 피역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났다. 16세기는 조정에서 경차관을 파견하여 부역제 아래 국영의 은점을 강행하려 했지만 민간의 잠채(潛採)와 부상대고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민영 은점이 간헐적으로 등장한 시기이다. 특히 조정은 은의 유출과 사적인 채굴인 사채(私採)를 엄금하고자 하였으나 잠채의 증가로 은의 유출이 증가했다. 17세기는 각 군영들이 독자적으로 감관을 파견하여 군역의무자를 사역하는 부역제 아래의 관영 군수광업이 시행된 시기로 한편에서는 부역농민들이 역에 복무하면서도 사채를 도모하여 관민이 모두 함께 은을 채굴하는 시기이다. 특히 은이 가장 많이 산출되는 단천의 공은점(貢銀店)을 개설하면서 관민병채제(官民竝採制)를 운영하여 공은의 채납과 동시에 사채를 허용하는 제도로 나아갔다. 18세기는 호조에서 별장을 파견하여 세금 징수의 업무를 대행하게 하고 운영권을 종사자에게 허가하는 관설민영(官設民營)의 방식이 발달하였다. 동시에 호조와 군문, 영읍 사이에 은점 설치와 세금 징수권을 둘러싸고 분쟁이 잦았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전반에는 물주제가 적용되면서 혈주나 덕대가 물주의 자본으로 은점을 경영하는 민영광업이 발달한 시기이다.

참고문헌

  • 유승주, 『조선시대 광업사연구』, 고려대학교출판부, 1993.
  • 임병훈, 「조선후기 광업경영의 발전-금·은광업을 중심으로-」, 『한국사연구』 32,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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