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법원(陸軍法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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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시기에 군대 내 민·형사 사건 심판을 담당한 기구.

개설

육군법원은 1900년(광무 4) 군대 내 민사, 형사 사건 심판과 감옥 통제를 맡기 위해 설치된->한 원수부 산하 기구이다. 육군법원의 설치와 운영은 원수부 체제의 정립과 관련된다. 원수부는 강력해진 황제권을 배경으로 군부의 군령권을 가져왔고 중앙의 친위대, 지방의 진위대 체제를 완성시켰다. 육군 법률을 바탕으로 육군법원과 육군 감옥을 신설하여 실제 운영하기도 하였다. 육군법원장은 중요하지 않은 안건에 대해서는 직접 판결할 수 있었으나, 중요 안건에 대해서는 원수부 검사국 총장에게 보고한 후 지령을 기다려야만 했다. 육군법원이 원수부의 통제 아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07년 7월 군부 해산과 함께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육군법원은 1900년 9월 원수부 소속으로 설치되었다. 1899년 설립된 원수부는 몇 차례의 관제 개정을 통해 대한제국 최고의 권력 기관으로 위상을 굳혀가고 있었다. 1900년에는 원수부가 중심이 되어 군사 관련 조직이 정비되고, 예산도 증액되었다. 육군법원의 경우에도 원수부 검사국 총장이 관할한다고 규정하였기 때문에, 원수부는 군대 내 민·형사 사건의 심판과 감옥 통제 권한까지 일괄적으로 장악하게 된 것이다.

조직 및 역할

1900년 9월 14일 육군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동시에 육군법원 창설 지시가 내려졌고, 9월 18일 관제가 반포되었다. 육군법원은 원수부 검사국 총장의 관할에 속하여 육군 군인의 민·형사 사건을 심판하며 감옥을 감독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육군법원의 구성은 칙임관 원장 1인, 이사(理事) 3인, 판임관주사 5인이었다. 1902년 2월 육군치죄규정(陸軍治罪規程)에 따르면 육군법원에서는 지방 각 군대의 심판 안건, 군인으로 외국인에게 피소된 형사 사건, 포로 범죄, 한성 각 군대에 있는 군인의 소송 등을 다루었다. 육군법원장은 군인의 민사 사건, 유형(流刑), 역형(役刑) 15년 이하의 죄는 직접 판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특별히 지시된 안건이나 칙임관·주임관 심판 안건, 종신형 이상의 안건 등은 원수부 검사국 총장에게 보고한 후 지령을 기다려야만 했다.

변천

1904년 9월 군사 관련 각종 관제가 개정·신설될 때 육군법원 관제도 개정되었다. 이 개정에서 육군법원은 원수부 소속이 아니라 군부 대신 관할에 속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이후 1907년 7월 30일 군부가 해산되면서 육군법원도 폐지되었고, 수감 중이던 기결수·미결수들은 평리원으로 넘겨졌으며, 군인 등에 대한 사법권은 주차(駐箚) 일본군 군법회의에 위탁되었다.

참고문헌

  • 『한말근대법령자료집(韓末近代法令資料集)』
  • 서인한, 『대한제국의 군사제도』, 혜안, 2000.
  • 조재곤, 「대한제국기 군사정책과 군사기구의 운영」, 『역사와 현실』19,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