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현(彦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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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던 조선시대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언양현(彦陽縣)은 신라의 거지화현(居知火縣)에서 기원한다. 신라 경덕왕 때 헌양현(巘陽縣)으로 개칭되어 양주(良州: 현 경상남도 양산시 일원)의 영현(領縣)으로 편성되었다. 고려시대에도 헌양현이라 하고 울주(蔚州)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1143년(고려 인종 21)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고, 이후 언양현으로 개명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도 언양현으로 유지되었고, 감무는 현감(縣監)으로 개칭되었다. 임진왜란 직후 잠시 울산에 합병되었다가 1612년(광해군 4)에 복구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언양군(彦陽郡)이 되었으나, 1914년에 폐지되고 그 영역은 울산군(蔚山郡)에 합병되었다. 조선시대에 언양현은 현재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지역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언양현은 신라의 거지화현에서 기원한다. 신라 경덕왕 때 헌양현으로 개명하였으며, 신라 9주 중 하나인 양주의 직속 영현으로 편성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그대로 헌양현이라 불렸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울주의 속현이 되었다. 1143년에 지방관인 감무가 파견되었으며, 이후 언양현으로 개명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그대로 언양현이라 하였으며, 1413년(태종 13)에 전국 각 고을의 감무를 현감으로 개명하면서(『태종실록』 13년 10월 15일), 언양감무 역시 언양현감으로 개칭하였다.

조직 및 역할

언양현은 신라시대에는 양주의 영현인 헌양현으로 편성되었다. 당시 헌양현에는 소수(少守) 혹은 현령(縣令)이 지방관으로 파견되었다. 고려시대에 헌양현은 울주의 속현으로 편성되었기 때문에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다. 그 대신 헌양현에는 읍사(邑司)가 설치되어 토착의 향리(鄕吏)들이 읍사에서 자치적으로 지방 행정업무를 수행하였다. 헌양현에는 1143년부터 지방관인 감무가 파견되었고, 이후 언양현으로 개명하였다. 조선 건국 후인 1413년에 감무는 현감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향리의 권한과 지위는 약화되고 언양현감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언양현에는 종6품의 현감과 종9품의 훈도(訓導)가 파견되었다. 18세기의 지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언양에는 6품의 무관(武官)이 현감으로 임명되며,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軍官) 13명, 인리(人吏) 19명, 지인(知印) 7명, 사령(使令) 12명, 관노(官奴) 12명, 관비(官婢) 10명이 편성되었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도 종6품의 현감이 임명된다는 내용이 있다.

변천

1413년에 언양감무가 언양현감으로 개칭된 이후 한동안 언양과 관련하여 연혁에서 특별한 변동 내용은 없었다. 다만 임진왜란 직후인 1599년(선조 32)에 언양현을 울산에 합병했다가 1612년에 다시 언양을 복구하였다. 1895년에 전국을 23부로 나누었을 때 언양군으로 변동되어 동래부의 관할에 속했다. 1896년(고종 33)에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언양군은 경상남도 관할의 4등군으로 편제되었다. 하지만 1914년에 일제가 지방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언양군은 폐지되고 그 영역은 울산군에 합병되었다. 조선시대에 언양현의 관아는 현재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에 위치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